한 손에 딱 잡히는 작고 가볍고 예쁜 책. 그러나 대담하고 파격적이며 과감하고 솔직하다. “이 책은 독자를 확보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애써 공감을 얻는 데 진력이 난 상황에서 쓰였기에 그렇습니다.”(들어가며 중)
출간한 지 두달도 안 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 도서시장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일 온라인서점에 입고되자마자 사회과학분야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이 책은 지난 6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20일 만에 4300만원이 넘는 후원 금액을 달성해 이 플랫폼 출판 분야 최고 목표금액 기록을 세웠다.
지은이 이민경(24)씨는 통역대학원에 재학중인 언어전공자로, 페미니즘을 “피 터지게 독학”했다고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9일 만에 책을 썼습니다. 본인 상처도 괴로운데 차분하게 듣는 사람 구미에 맞춰 설명하기를 요구받는 일에 많은 여성들이 지쳐 있지요. 상대가 적대적이거나 힘이 드는 상황에서 특히 답답해하는 경험을 지금 당장 제 또래 여성들은 누구나 하는 것 같습니다.”
책은 ‘성차별 토픽 일상회화 실전대응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전공자로서 회화가 안 되면 문법책을 공부하고 학원을 가는 것처럼 페미니즘도 실제 대화에서 필요한 회화서가 필요하다 생각했다”고 한다.
‘당신에게는 대답할 의무가 없다’는 첫 챕터부터 후련하다는 독자 반응. 이씨는 “현실에서 여성들에겐 친절하지 않을 자유마저 없다”고 말했다. 독자들이 이 책을 보고 ‘대답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처음 생각해봤다’는 반응을 보일 때,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가 꽤 커서 남녀 차별이 전보다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아요. 여건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성차별이나 부당함이 사라졌다는 건 아니지요. 성차별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에 합의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만든 독립출판사 봄알람은 20일 2차 텀블벅 펀딩을 시작한다. 이번 책 제목은 <눈이 뜨이는 페미니즘>. 막힌 입을 틔웠다면, 이제 눈을 뜰 차례. 이씨는 “앞으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고, 페미니즘 도서를 꾸준히 출간하고 싶다”고 말했다.
(봄알람 www.facebook.com/baumealame/ 참고)
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