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지음/창비·1만2000원 백수린(사진)의 두번째 소설집 <참담한 빛>을 첫 책 <폴링 인 폴>(2014)과 비교해 볼 때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에 대한 관심에서 타인의 아픔에 대한 관심으로의 초점 이동이다. 첫 소설집의 표제작과 등단작 ‘거짓말 연습’에서 말을 통한 소통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따져 보았던 작가는 이제 그 소통의 알맹이라 할 타인의 고통과 슬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듯하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이, 등단을 전후한 무렵에 소설 쓰기의 의미와 한계를 놓고 고민하던 작가가 이제 어느 정도 확신을 지니고 소설로써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해 나가기로 했다는 반증이겠기 때문이다. 표제작 ‘참담한 빛’에는 터널을 두려워하게 된 세 사람이 나온다. 독자에게 소개되기는 영화잡지 기자 정호-다큐멘터리 감독 아델 모나한-아델의 전남편 로베르 순서지만, 그들이 터널에 두려움을 지니게 된 순서는 거꾸로다. 1999년 3월24일에 일어난 알프스 터널 화재와 2015년 3월24일 저먼윙스 여객기 추락이 각각 로베르와 아델의 터널 공포증을 낳았다면, 정호가 둔내터널 앞에서 느닷없는 공포에 사로잡힌 것은 다시 그 뒤의 일이다. 1999년 사고의 희생자 중에는 로베르와 전처 사이 아이들이 있었지만, 2015년 사고 희생자 중에 아델이나 로베르 또는 정호와 직접 관련 있는 이는 없었다. 하물며 정호가 진입하려던 터널에서는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로베르의 상처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아델에게 옮겨 가고 아델의 공포가 다시 정호에게 전이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뱃속 아이를 유산한 뒤 정호 부부 사이에 찾아온 위기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 구실한다는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첫사랑’에서 첫사랑 선배의 몰락과 두 사람이 다녔던 학과가 통폐합 위기에 놓이는 상황이 포개지는 것이라든가, ‘북서쪽 항구’에서 아버지의 첫사랑을 찾아 이국의 항구로 간 남자와 그곳에서 만난 한국계 혼혈 여성 어머니의 첫사랑 이야기가 겹쳐지는 것 역시 아픔과 관심의 전이 내지는 연대로 해석된다. 생모를 만나고자 한국을 찾았으나 바람을 이루지 못한 이종사촌을 보면서 어려서 자신의 실수로 놀이공원에서 잃어버린 남동생을 떠올리는 ‘시차’의 주인공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분단과 국경으로 상징되는 세계의 불행 속에서 그래도 따뜻하고 향기로운 말을 들려주고자 “삶을 향해 나가”기로 결심한다는 자전소설 ‘국경의 밤’이 시사적이다. 최재봉 기자, 사진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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