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런 피츠패트릭 지음, 김경영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2008년 초, 미국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에 후보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이 뉴햄프셔 세일럼의 한 고등학교 강당에서 연설을 하던 때였다. 남자 두 명이 외쳤다. “내 셔츠나 다려라!” 훨씬 오래전, 비슷한 일을 겪은 세 명의 여성이 있다. 1872년 미국 여성 최초로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 빅토리아 우드헐, 1964년 여성 최초로 주요 정당의 후보 지명을 받은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 1972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셜리 치점이다. <가장 높은 유리천장 깨기>는 이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심령치료사, 주식중개인, 여성해방운동가, 자유연애주의자였던 빅토리아 우드헐은 1920년 미국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기 몇십년 전에 스스로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을 했다. 언론은 그에게 “뇌쇄적인 우드헐” “어여쁜 환전상” “무당벌레”라며 경멸에 찬 시선을 보냈다. 우드헐은 비난에 대담하게 맞섰지만 고발당했고, 그의 정치활약상은 점점 잊혀 갔다. 여성 최초로 미국 상·하원의원 모두를 지낸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는 강경한 냉전정치가였지만 ‘반공 사냥’에 나선 매카시와 맞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했지만 여성 정치인으로서 냉대는 피하지 못했다. 공화당 대선 출마선언 직후 논리가 없고, 승산이 없다는 비난을 넘어 ‘폐경기’를 암시하는 공격까지 받았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을 받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 1968년 처음 하원의원이 된 셜리 치점은 성별과 인종이라는 “투 스트라이크”를 먹은 상태에서 1972년 다른 10명의 후보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선거운동 열 달 내내 검증 공세에 시달렸지만 여성해방운동의 핵심 사안을 지지하는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 특유의 기지와 의지, 유머로 난관을 돌파한 끝에 1972년 전당대회에서 그는 2008년 힐러리 클린턴 이전까지 어떤 여성 대선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뉴햄프셔대 역사학과 교수인 지은이 엘런 피츠패트릭은 여성인권운동을 다룬 공저 등 미국 정치사와 페미니즘을 연결하는 데 애써온 저술가. ‘에필로그’에서는 힐러리의 대권 도전 이야기를 담았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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