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관습의 압력을 걷어찬 ‘인생여행기’

등록 2016-08-25 19:58수정 2016-08-25 20:07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한겨레출판·1만3000원

한겨레문학상 작가 장강명(사진)이 첫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을 펴냈다.

왜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나야 했을까? 2009년 여름, 마포구청에 혼인신고를 했으나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신문 1단짜리 광고로 결혼 공표를 갈음했다. 그의 20평 전세아파트에 아내 HJ가 침대를 사 오는 것으로 간단히 제도적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을 안 올렸기 때문에 결혼 휴가를 못 받았고, 신혼여행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사이 11년간 다녔던 신문사를 그만뒀고, 1년간 틀어박혀 장편소설을 다섯 편 썼다. 그뿐인가. 아이를 낳지 말자는 합의 아래 정관수술을 감행함으로써 결심을 굳혔다. 5년은 두 청춘이 한국 사회의 “관습의 압력”을 보기좋게 거부한 시간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장강명 작가
장강명 작가
몇번이나 미루고 잰 끝에 2014년 11월, 아내와 3박5일로 필리핀 보라카이에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어느 여행 블로그보다 소상한 여행담으로 소소한 재미를 주지만, 그보다는 HJ와의 만남부터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하는, “한 성깔 하는 두 남녀”의 지지고 볶는 얘기로 읽는 맛을 더한다. 장편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닮았다. 여기에, 20대 시절의 무망한 도전, 부모님과의 가치관 대립, 하루 12시간 이상 중노동을 했던 신문기자 생활, 일상 속의 허위의식과 싸우는 청춘 객담이 녹아들었다.

그는 일찌감치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았다.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부모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기업 계열 건설사를 그만뒀다. 집에서 도망쳐나와 고시원 생활을 하다 신문기자가 됐다. 10년 뒤엔 국회 기자실에서 전화기 전원을 끄고 집으로 가버렸다. “인생은 위험하다. 안전한 삶에 대한 기대는 망상이다.” 그는 ‘안락한 감옥’을 걷어차고 ‘글의 감옥’에 갇혔다.

여행상품 선택에서 드러나는 둘의 실용주의적 면모는 통념에 맞서는 데에도 서려 있다. “우리 집 창고 문에는 ‘효도는 셀프’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내 부모님은 나에게 효도를 받고 HJ의 부모님은 HJ에게 받으면 안 될까?” 결혼에 반대한 어머니와 아내와의 화합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느니 그냥 부모님에게 연락을 안 하는 방법을 택한다.

보라카이 바다 위 ‘선셋 세일링’에서 얻은 깨달음. 멍해지려고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고, 마라톤의 러닝하이를 향해 뛴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대신 괴로움에 빠뜨린다. 잠깐 경험한 스쿠버다이빙의 신세계도, 달리는 시간 대부분 억지로 달린 풀코스 마라톤의 ‘러닝하이’며, 특종의 짜릿함으로 무마한 11년의 기자 생활도 그러했다는 걸 말이다.

말린 바나나를 2년이 되도록 다 먹지 못했다는 그의 여행 후기를 들어보자. “여행지에서 음식을 너무 많이 사 오지 말자.” 즐겁게 잘 살고 있다는 다른 말일 것이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비밀의 은행나무숲’ 50년 만에 첫 일반 공개 1.

‘비밀의 은행나무숲’ 50년 만에 첫 일반 공개

“노벨상 작가 글이니”…쉽게 손댈 수 없었던 오자, ‘담담 편집자’ 2.

“노벨상 작가 글이니”…쉽게 손댈 수 없었던 오자, ‘담담 편집자’

‘한강 효과’ 주문한 책이 밀려온다…마음 가라앉는 즐거움 아는 당신께 3.

‘한강 효과’ 주문한 책이 밀려온다…마음 가라앉는 즐거움 아는 당신께

일본 독자 30명, 박경리 ‘토지’ 들고 ‘아리랑’ 부른 이유 4.

일본 독자 30명, 박경리 ‘토지’ 들고 ‘아리랑’ 부른 이유

1600년 전 백제인도 토목공사에 ‘H빔’ 사용했다 5.

1600년 전 백제인도 토목공사에 ‘H빔’ 사용했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