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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술 덕후’들의 취향을 저격할 책 2권

등록 2016-09-01 19:09수정 2016-09-01 19:26

빈방의 빛 -시인이 말하는 호퍼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한길사·1만8000원
스크린의 추방자들
히토 슈타이얼 지음, 김실비 옮김/워크룸프레스·1만5000원

이른바 ‘독서와 사색의 계절’ 가을을 맞아 여러 권의 미술 에세이들이 나오고 있지만, 2~3년 전에 견줘 그 수는 줄어들었다고 한다. 교보문고 진영균 브랜드관리팀 대리는 “미술 애호가들의 안목이 높아지면서 요즘은 전문적인 미술서 발간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미술의 대중화로 ‘말랑말랑한 미술서’가 유행해온 것과는 다른 경향이다.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그림을 다룬 <빈방의 빛>, 그리고 현대미술과 신자유주의의 관계성을 폭로하는 <스크린의 추방자들>은 이렇게 전문가에 준하는 ‘예술 덕후’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할 만한 책이다. 먼저, <빈방의 빛>(1994)은 미국의 계관시인 마크 스트랜드(1934~2014)가 호퍼의 그림 30점을 해설한 책이다. 호퍼의 작품은 독특한 빛 처리, 짧고 고립된 찰나의 표현, 텅 빈 공간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효진·공유가 등장하는 온라인쇼핑몰 광고도 그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작가 스트랜드의 절제된 언어가 호퍼의 초현실적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킨다. 2011년 미국 개정판을 따라, 한국어판 초판 이후 9년 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미술사 전공자로 번역·저작 활동을 해온 옮긴이 박상미씨는 호퍼 작품의 출판 저작권을 얻으려 동분서주하며 이 책을 국내에 소개한 바 있다.

2010년대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상작가이자 저술가 히토 슈타이얼(50)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미디어 아트 전공)가 쓴 <스크린의 추방자들>은 현대미술의 치부를 정조준하며 도발한다. 일본과 독일에서 영화·철학을 공부한 학자이자 엄마,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슈타이얼이 작심하고 펼쳐 보인 ‘이미지의 정치학’인 셈. 그는 미술·영화·디지털 이미지의 탄생과 복제, 유통, 순환을 신랄하게 파헤치고 진단한다. 자본과 야합해 예술을 점령하며 삶을 착취하는 ‘스크린’은 현실을 은폐하는 막이자 이미지의 위계를 상징하는 은유다.

철학과 정치경제학을 넘나들고 급진적 사유를 펼치면서 슈타이얼은 신자유주의와 현대미술의 관계에 대한 폭로를 이어간다. 그는 오늘날 미술관이 “기호자본주의의 주전선수”로서 신자유주의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으며, 무급 노동하는 인턴들을 착취하는 “문화 산업의 공식 대리점”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현대미술은 “부의 재분배의 부스러기를 먹고 산다”고 비판한다.

국내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 슈타이얼의 유명한 텍스트 ‘가난한 이미지를 변호하며’를 보면, 이미지는 “대체로 남성인 천재적 인물과 원본에 대한 집착”을 가진 “고급한 경제”와,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불법 복제물이나 전위적·비상업적인 영화 등 “가난한 이미지”로 나뉜다. 물론 혐오 발언 등을 실어나를 수 있다는 점에서 가난한 이미지가 지닌 한계도 뚜렷하지만, 이런 이미지의 유통은 세계 노동자를 연결하는 끈이 되거나 관객을 조직할 공산주의적인 측면도 있다. 가난한 이미지는 “보수주의와 착취에 대한 만큼이나, 저항과 전유에 대한 이야기”이며 곧 “현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풍요는 추락하는 자유라고 슈타이얼은 말한다. 오늘날 이미지가 처한 불안하고도 불확실한 현실을 차갑게 논증하면서도 그는 뜨겁게 생을 응원하고, 삶과 만나는 예술을 선동한다. 각자의 영토를 “다시 편집하자. 재구축하라. 편성하라. 부수라. 표현하라. 낯설게 하라. 해동하라. 가속하라. 거주하라. 점령하라”는 선언은 그래서 예술가들에게 더욱 희망적인 메시지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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