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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비정규직 천만 시대 해법, 스웨덴에서 찾다

등록 2016-09-01 19:54수정 2016-09-01 19:59

한국 ‘과잉 유연성’ 탓 비정규직 양산
‘관리된 유연성’ 스웨덴 모델 원용
“정부 나서 유연-안정 균형 찾아야”
노동시장의 유연성-안정성 균형을 위한 실험
조돈문 지음/후마니타스·2만5000원

노동시장에서 유연성과 안정성은 상충하기 일쑤다. 자본은 유연한 고용을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반면, 노동은 안정적인 취업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생존 기반이라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이 두 가치는 거의 항상 대립하고 갈등하지만, 대개는 계급 역학에 따라 유연성 쪽이 승자가 되게 마련이다.

그 실상은,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한국은 유연성에서 최상위 국가군에 속한다. 가령 1년 미만 단기 근속자 비율이 가장 높은 반면,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 비율은 제일 낮다. 임시직 비율은 폴란드, 스페인, 네덜란드에 이어 4위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피고용자(2015년 8월 기준)의 44.7%인 862만명에 이른다. 여기에 자영업자로 분류된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와 협력 업체 정규직으로 분류된 사내 하청 노동자까지를 합치면 1천만명을 크게 웃돈다는 추정도 나와 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율은 하락세를 이어온 끝에 2015년 49.5%로 떨어졌다.

노동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조돈문(62) 가톨릭대 교수(사회학)가 새로 낸 책 <노동시장의 유연성-안정성 균형을 위한 실험>은, 이렇듯 “과잉 유연성”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하면 안정성과 사이에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더 구체적으로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 무엇일지 모색한다.

스웨덴은 이른바 ‘관리된 유연성’을 토대로 노동시장에서 유연성과 안정성의 균형점을 찾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스웨덴의 대표적 기업인 볼보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차량 조립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스웨덴은 이른바 ‘관리된 유연성’을 토대로 노동시장에서 유연성과 안정성의 균형점을 찾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스웨덴의 대표적 기업인 볼보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차량 조립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유럽 여러 나라의 경험과 유럽연합의 실험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데 책의 상당 분량을 할애한 조 교수가 종국에 주목한 것은 스웨덴의 ‘관리된 유연성’ 혹은 유연안정성 모델이다. 유럽연합이 2007년 12월 확정해 발표한 유연안정성 공통 원칙의 바탕도 스웨덴으로 대표되는 이 북유럽형 스칸디나비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의 노동계급은 (…) 노동시장 유연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이를 허용하되 적절한 수준에서 사회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스웨덴의 이 ‘관리된 유연성’은 고용계약 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노동시장에서 정리 해고는 허용되지만, 노사 합의를 통한 공동 결정제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자의적 정리 해고는 불가능하다. 비정규직도 사용할 수 있지만, 동등 처우 원칙을 적용하고 그들의 임금 안정성을 보장한다. 파견 노동자의 경우엔 파견 업체가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하고, 파견 기간에는 사용 업체의 단체협약으로 보호하며, 비파견 대기 기간에도 임금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관대한 실업급여 제도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함께 실행함으로써 구직 기피라는 부정적 효과는 최소화하고, 시간 여유를 갖고 적합한 직업을 찾게 하는 긍정적 효과는 강화할 수 있었다.

“스웨덴 노동시장의 ‘관리된 유연성’은 이해 당사자들 간의 윈윈 게임이라 할 수 있다. (…) 스웨덴과 비교하면, 한국의 노동시장은 안정성 결여와 유연성 과잉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래서 스웨덴의 경험을 ‘맥락적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추천한 조 교수는 우리 노동시장의 최대 과제인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으로 ‘유연성 억압과 안정성 강화를 통한 균형 추구’를 제시하고 있다. 유연성도 안정성도 지금처럼 각 개별 사업체에 내맡겨 놓아서는 해결이 난망하다는 판단이다.

“정책 대안의 핵심은, 상시적 업무와 시민의 생명·안전을 담보하는 업무에는 사용 업체가 직접 정규직을 고용해 고용과 소득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비상시적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되 그들의 고용·소득 안정성은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정부가 노동시장의 비상시적 업무 수요와 비정규직 공급 총량을 관리하고, 적절한 교육 훈련·일자리 중개 서비스를 통해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조 교수는 제안하고 있다. 관대한 실업자 소득 보장을 위해선 고용 보험제도를 확충·강화하는 것이 필수다. 재원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고용 유연성의 수혜자인 사용 업체들이 부담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비정규직 차별 처우의 입증 책임은 노동자에게, 동등 처우의 입증 책임은 사용자에게 각각 부과해야 실효성이 생긴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정한 존재인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선 고용 계약이 끝날 때 총임금의 10%를 ‘고용 불안정 수당’으로 지급하는 프랑스, 근속 연당 12일분의 임금을 ‘고용계약 종료 수당’으로 주는 스페인 사례가 좋은 연구 대상일 수 있다.

책을 낸 조 교수는 며칠 전 추가 연구를 위해 5주 일정으로 스웨덴에 갔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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