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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99% 헬조선 사회 몸으로 타파하는 ‘시’ 필요하죠”

등록 2016-09-06 18:30수정 2016-09-06 22:10

[짬] 두번째 산문집 낸 이시영 시인
이시영 시인. 사진 박종식 기자 <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이시영 시인.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시영(67) 시인이 생애 두번째 산문집 <시 읽기의 즐거움>(창비)을 펴냈다. 1995년 첫 산문집을 낸 뒤 21년 만이다. 1969년 등단해 13권의 시집을 낸 시인은 두번째 산문집의 부제를 ‘나의 한국 현대시 읽기’로 달았다. 8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시와 문학을 주제로 틈틈이 써온 글을 묶었다.

시인은 한국 리얼리즘 시단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그의 시엔 말보다 침묵이 광대하다. 함축적 시어로 세상의 진실에 접근해온 시인은 최근엔 다양한 형식 실험을 시도하며 독자와 만나고 있다. 창비(1980~2003년 재직)에서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지냈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2012~15)으로도 일했다. 그를 지난 2일 서울 서교동 창비카페에서 만났다.

21년만에 ‘시 읽기의 즐거움’ 출간
한국 현대시 단상·비평 문제 ‘비판’
김수영·고은·김지하 등 문단 일화도
“대학때 ‘오적 충격’ 리얼리즘 끌려”

10남매 중 6명 일찍 떠나 ‘외아들’
“성장기 많은 죽음 등 겪으며 시세계로”

“지금 시인들은 시가 주체의 발화라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 같아요. 시는 주체의 고민이며, 주체가 삶에서 느끼는 각성 그리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나 전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요즘 시인들에겐 감각만 있는 것 같아요.”

시인은 기자에게 <창비> 최근호 목차를 보여줬다. “기고 시인 25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감각파이군요.”

그는 지금이야말로 리얼리즘이 작동되어야 할 때라고 했다. “감각의 놀음에서 벗어나” 현실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1% 대 99%, 헬조선의 사회에서 몸으로 현실을 타파해나가는 그런 시도 필요하며, 그런 시인 역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최근 사드 반대 시(‘너희는 레이더 앞에서 참외나 깎아라, 우리는 싸울 테니’)로 주목받은 성주 출신 시인 김수상과, 온몸으로 투쟁 현장을 지키는 송경동의 시에서 그는 ‘이 시대의 리얼리즘’을 본다. “모든 시인이 리얼리즘을 추구할 순 없겠죠. 다만 현실의 강고함과 맞서 언어와 함께 자기 성채를 구축하는 리얼리스트가 필요합니다.”

그는 책에서 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시 비평을 문제삼기도 했다. “제가 책을 낸 이유이기도 하죠. 비평가들이 시를 자신의 지식체계 안으로 끌고 와서 너무 뻔한 비평을 합니다. 작품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낌을 보태면서 시를 이해해야 하는데, 자신의 지식체계 안에서 의미만 해독합니다.”

그래도 좋은 비평가는 있을 것이다. “유종호 선생이 시를 많이 읽죠. 시에 대한 혜안이 있어요. 교보문고에서 시집을 보면 그 자리에서 시를 외운다고 하더군요. 젊은 비평가 가운데는 신형철씨가 시를 잘 봅니다. 최승자·이성복·황지우 시인을 발굴한 고 김현 선생은 대단한 예지력이 있었죠.”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 김수영이 대단한 시인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김수영은 4·19 뒤 쓴 시에서 ‘우선 그놈(이승만)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고 했어요.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이란 표현도 나옵니다. 일상어로 시를 썼어요. 시어의 금기를 깨트렸죠.” 그가 보기에 미래파(감각파) 시인을 포함해 지금의 시인들은 모두 “김수영의 자식들”이다. 시인의 이런 ‘김수영 사랑’에 대해 백낙청 교수는 “이 시인, 내가 보기에 고은의 ‘만인보’ 같은 시는 김수영을 뛰어넘었어요”라고 했단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27~30권에서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삶을 매우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죠. 한국 시의 뛰어난 성취입니다.”

전북 구례군(지금은 전남)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어린 시절 유난히 많은 죽음을 겪었다. 10남매 가운데 6명이 어린 나이에 삶을 마쳤다. “구례 들판은 겨울이 되면 쓸쓸해집니다. 청소년 시절 이런 휑함을 견디기 힘들었죠. 해가 저물면 동산에 올라가 생각에 잠기기도 했어요. 죽음이 많았던 성장기의 가정환경 등도 겹쳐 시를 쓰게 된 것 같아요.”

시인은 서라벌예대 재학 시절을 ‘모순의 시간들’로 기억했다. “서정주, 김동리 같은 분이 가르쳤죠. 당시 대학에선 시가 현실을 다루는 것을 반체제적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3학년 때 만난 김지하의 ‘오적’은 충격이었다. 오적을 외우다시피 했다. “당시엔 오적을 시라고 안 봤죠. ‘반체제 삐라’라고 생각했어요. 김지하가 정치적 언어를 시어로 가져온 것은 사실 앞서 김수영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그는 창비 편집자 시절이던 1982년 자신을 리얼리스트로 만든 김지하 시인의 시선집(<타는 목마름으로>)을 직접 만들었다. 당시 사전검열 제도에 순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끌려가 입술이 터지는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책엔 그가 창비 시선 편집자로서 겪은 일화들이 나온다. 고교 은사의 출판 부탁을 거절해 스승과의 인간관계가 끝나기도 했다. 그는 이 고백에서 “(나의 행위는)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아주 잘한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창비에서 나온 뒤 그는 중앙대를 거쳐 지금은 단국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시인은 지난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문학권력 논쟁의 주요 ‘선수’였다. 그는 창비와 백낙청 교수에 대한 비판적 지지파로 분류됐다. “당시 저는 작가회의 이사장이었어요. 조심스러웠죠. (나선 이유는) 단순합니다. 백 교수가 표절을 흔쾌히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문제지만 ‘창비 편집위원 전원 사퇴’, ‘창비 잡지 접어라’ 같은 비판 쪽 주장이 과하다고 생각해서죠.” 이런 이야기도 했다. “흐지부지 끝난 문학권력 논쟁이나 최근 한강 작가의 수상 열기를 보면서 이젠 한국 문학이 ‘고독의 시간’으로 달려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논쟁의 성과가 없진 않을 것이다. “선호하는 작가를 너무 선호하고 신인 키우기에는 소홀한 한국 메이저 문학 출판사들의 작동구조를 그대로 보여준 것은 의미가 있었죠. 출판사에 약이 될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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