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은행나무·1만3500원
알랭 드 보통(사진)의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원제 The Course of Love)은 그의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1993)의 속편처럼 읽힌다. 첫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보통 소설의 에세이적 특성은 여전하다. 주인공 남녀 라비와 커스틴의 연애와 결혼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짧은 철학적·사회학적 단상이 갈마드는 방식은, 견주자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고통>과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 한 책을 이룬 듯한 느낌을 준다.
“보통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이다.”
보통의 새 소설은 ‘연애’와 ‘사랑’을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책은 모두 5부로 이루어졌는데 ‘낭만주의’라 이름붙인 제1부가 낭만적 연애 과정을 다룬다. 그 마지막 장 제목 ‘청혼’은 연애의 완성이자 그 종말로서 맞춤해 보인다. 기왕의 문학예술작품들이 사랑의 시작 단계에 불과한 연애에만 초점을 맞추고, 더 원숙하고 완전한 사랑이라 할 결혼 이후의 일상을 소홀히 해 왔다는 것이 작가의 문제의식이다. 그 문제의식 위에서 보통이 하고자 하는 말은 마지막 5부 제목 ‘낭만주의를 넘어서’에 집약된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 (…)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이라는 문장이 소설 주제를 요약한다.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소설 속 결혼에 대한 정의는 매우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이 결혼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정의는, 결혼이라는 것이 그만큼 각오와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며 책임감을 수반하는 선택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남녀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성격 차이로 인한 다툼과 외도 같은 크고작은 위기를 넘기며 마침내 ‘진정한’ 결혼에 성공하기까지 과정을 좇으면서 독자는 연애와 결혼 생활에 관한 사례를 곁들인 상담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을 법하다.
이 책이 ‘보통 21년 만의 장편소설’이라는 출판사의 설명은 석연치 않다. 보통은 2012년 정이현과 함께 일종의 프로젝트 소설 <사랑의 기초: 한 남자>를 낸 바 있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