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의 뿌리
이하석 지음/한티재·8000원
대구의 시인 이하석(68·사진)이 1946년 대구 10월 항쟁과 그에 따른 죽음들을 노래한 연작 시집 <천둥의 뿌리>를 펴냈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릅니다./ 대답하면 나는 너무 명백하게 드러나버립니다./ 가창골, 송현동, 상인동, 본리동, 앞산 빨래터 계곡, 경산 코발트 광산, 칠곡 신동재와 돌고개에서/ 모든 나는/ 그렇게 죽음 앞에 세워지지요.”(‘호명 1’ 부분)
“그들”이란 물론 10월 항쟁과 그 여파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가리킨다. 시인은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을 그 죽음 앞에 세운다고 말한다. 시인이 70년 전 죽임과 죽음의 현장을 눈앞에서 본 듯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그 부름에 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밧줄로 엮인 채/ 산길을 끌며 올라와/ 이쯤에서 제 무덤을 팠겠지요./ 제가 판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주변의 비탈을/ 손가락으로 긁어대며 버텼겠지요,/ 풀넝쿨처럼, 악착으로.”(‘발굴’ 부분)
시집에 실린 시 51편 가운데 가장 긴 15쪽짜리 시 ‘컨테이너’는 1950년 여름 경산 코발트 폐광산에서 벌어진 군경의 민간인 학살, 그로부터 반세기 뒤인 2005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주도한 유해 발굴, 그리고 정권이 바뀐 뒤 발굴이 중단되고 컨테이너 안에 방치된 유해들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앞마당으로 옮기고 유가족들을 ‘오월어머니회’가 맞이하도록 한 미술가 임인욱의 퍼포먼스까지를 한 줄에 꿴다. 시인의 의도는 분명하다. 70년 세월이 흘렀지만 진상 규명과 화해 및 상처 치유는 여전히 요원하다는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래, 이 마당에/ 국가란 무엇인가요?/ 밝힐 수 없는 죽음을/ 성찰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어떤 고통의 속인가요?/ 책임의 윤리는 무엇인가요?”(‘컨테이너’ 부분)
이 질문에서 최근 우리 사회가 목격한 세월호 참사와 그에 대한 국가의 대응을 떠올리는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시인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을 “다 기억한다./ 기억해야 한다”(‘나는 기억한다’)고 주장하고 다짐하는 것은 70년 전 일이 지나가 버린 과거사로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도 되풀이되고 또 될 수 있는 영원한 현재형이자 가능태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하석 시인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누구를 편들자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난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는 아량을 보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시집을 묶었다”고 말했다.
최재봉 기자, 사진 이하석 시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