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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전향한 스파이들이 찾는 책 ‘패자의 서’

등록 2016-10-06 19:57수정 2016-10-06 20:23

고요한 밤의 눈
박주영 지음/다산책방·1만3800원

“우리는 모두 스파이이고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한다. (…)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세상, 그 세상의 이면에 우리가 있고, 우리의 이면에 또 누군가가 있다. 누군가 우리를 모른 체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등 뒤를 모른 체한다.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지만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우리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박주영(사진)의 소설 <고요한 밤의 눈>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이면에서 보이지 않는 활동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는 ‘스파이’들의 이야기다. 실종된 쌍둥이 언니의 비밀을 추적하는 여성 D, 스무살부터 15년의 기억을 잃은 채 병원에서 깨어나 스파이의 삶을 살게 된 남자 X, 그의 여자친구 역할을 맡은 Y, X의 상관인 남자 B, Y의 감시를 받는 소설가 Z가 주요 인물로 등장해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 간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에 일조할 수 있다고,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을 앞당길 수 있다고 믿고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B가 자신의 멘토이자 보스에게 하는 말에 따르면 ‘스파이’라는 어감과는 달리 그들이 하는 일은 인간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B 자신을 포함해 소설 속 스파이들은 점점 더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를 느낀다. 그 까닭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소설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현실은 B의 그런 믿음을 배신하고 능욕하기만 하는 것이다.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이 모두 비슷한 문제 의식을 느끼고 ‘스파이’의 세계에 반기를 들기로 하며 그 핵심에 ‘패자의 서’라는 이름을 지닌 책이 자리잡는다.

“역사가 승자들에 의해 쓰여지는 건 상식입니다. (…) 그렇다면 패자들은 무엇을 쓸까요? 패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남길까요? 승자들이 인멸한 증거를 상상력으로 극복하고, 이야기로 전달하고 유포시키겠죠. 최고의 이야기에는 진실이 담겨 있는 법입니다.”

‘다른’ 가능성을 찾아 떠난 모험 끝에 소설가 Z가 맞닥뜨린 인물이 하는 이런 말은 이 소설의 주제이자 문학의 존재 이유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스파이 체제의 구체적인 작동 방식을 묘사하는 대신 주로 인물들의 사변과 대화로 이야기를 끌어 간다는 점은 아쉽다.

이 소설로 제6회 혼불문학상을 받고 4일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소설 제목은 감시의 눈(眼)을 가리킬 수도 있겠지만 밤새 한 송이씩 내려 세상을 하얗게 덮는 눈(雪) 같은, 변화와 희망의 씨앗을 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사진 다산책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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