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개비꽃 엄마
한승원 지음/문학동네·1만2000원
야만과 신화
한승원 지음/예담·1만5000원
꽃과 바다
한승원·조용호·장일구 지음/예담·1만5000원
소설가 한승원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목선’이 당선해 등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보다 이태 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가증스런 바다’가 입선한 사실은 그간 잊혀 왔고 작품 역시 망실되어 찾기 어려워졌다. 어쨌든 한승원이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지 50년에 즈음해 책 세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장편 <달개비꽃 엄마>와 자선 중단편집 <야만과 신화>, 그리고 대담과 문학 산문을 함께 엮은 <꽃과 바다>가 그것이다.
<달개비꽃 엄마>는 작가가 지난해 이맘때 냈던 장편 <물에 잠긴 아버지>와 짝을 이루는 듯하다. <…엄마>가 자전적 이야기인 반면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있지만, 아버지에 이어지는 엄마 이야기라는 연속성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등단 50주년을 맞아 장편소설과 자선 중단편집, 대담 및 산문집 등 책 세권을 한꺼번에 내놓은 작가 한승원.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날아가는 새, 그것이 문학입니다”라고 말했다. 예담 제공
“감히 말한다면, 이 소설은 어머니의 의미와 가치와 성스러움을 나 나름으로 더듬어보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있게 한 우주적인 뿌리이자, 나를 구원하고 위안하고 아픔을 치유해주는 여신이다.”(‘작가의 말’)
소설은 물론 어디까지나 허구의 장르라는 전제 위에 서는 것이지만, <달개비꽃 엄마>는 여느 픽션과는 달리 읽힌다. 이 소설에는 작가 자신과 부모 및 형제들은 물론 동료 작가 이청준 등 주변 인물들 역시 실명으로 등장한다. 세부에서는 허구적 가공이 있을 수 있어도 이야기의 기본 틀은 사실에 입각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함께 나온 대담 및 산문집 <꽃과 바다>에서 대담자들과 자신의 지난 삶을 회고하는 가운데 작가는 몇몇 일화들이 이 소설 <달개비꽃 엄마>에 고스란히 포함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학교에 다녔으며 학생을 대표해 학교 홍보 연설을 할 정도로 당차고 똘똘한 소녀였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선생인데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었던 남자와 결혼을 하고 무려 십일 남매를 낳았으며, 어려서 여읜 둘을 제한 나머지 아홉 남매를 살뜰히 키웠다. 그 과정에서 둘째아들인 작가 자신이 엄마의 말마따나 “우리 집안 영웅” 노릇을 하며 동생들을 더불어 키웠다. 젊어서 계몽운동에 헌신하는 신지식인이었던 아버지는 나이 들면서 보수적이고 완고한 노인으로 변한 반면, 여러 조상의 제사를 하루에 몰아 지낼 정도로 진취적인 어머니는 문학을 향한 아들의 열망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했다.
작가가 고향 집에서 80리 떨어진 장흥 읍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무렵,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아들과 함께 장에 간 어머니는 팥죽을 한 그릇 시켜서 아들에게만 먹이고 자신은 싱건지로 배를 채운다. 이 장면이 함민복의 시 ‘눈물은 왜 짠가’를 연상시킨다면,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 문장 “어머니는 싱건지 한 사발만 마신 채로 꽃샘 눈보라를 뚫고 시오리 길을 허위허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터였다”는 동향 작가 이청준의 단편 ‘눈길’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가이자 세계일보 문학담당 기자 조용호와 문학평론가 장일구 전남대 국문과 교수와 나눈 대담에서 한승원은 <달개비꽃 엄마>에도 그려진 문학청년 시절 일화와 등단 초기 작가로 자리잡기 위한 안간힘, 광주에서 서울로 솔가해 올라갔다가 노년에 다시 서울에서 고향 장흥으로 내려온 계기, 신화적 요소를 적극 끌어들인 자신의 소설을 홀대한 기성 문단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친딸인 소설가 한강에 관한 생각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산문 문학은 저항성을 갖”는다고 믿는 그는 신화적 색채가 강한 자신의 소설에도 나름대로 저항 정신이 들었다고 보는데, 특히 비판적 리얼리즘이 승했던 지난 시절 그는 “어쩔 수 없이 따돌림을 당했”다. 한강의 소설에 대해 그는 “전통의 깊이에 뿌리내린 세계”이며 “갈등·대립 구도가 명백”하다면서도 “나의 세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주 신선하고 새로운 감각이 있”어서 자신도 자극을 받는다고 밝혔다. 한편 <야만과 신화>에는 공식 등단작 ‘목선’을 비롯해 ‘폐촌’ ‘앞산도 첩첩하고’ ‘해변의 길손’ 등 대표작 열세편이 묶였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