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승효상 지음/돌베개·1만4000원 하이데거는 “인간은 거주함으로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을 통해 장소에 새겨진다”고 했다. 땅 위에, 곧 터 위에 새겨진 무늬가 바로 ‘터무니’이니, 장소에 새겨지지 못한 삶은 “터무니 없는 삶”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터무니 있는 삶이 깃든 터무니 있는 도시와 건축은 뭔가? 건축가 승효상은 “그 터가 가진 무늬에 새로운 무늬를 덧대어 지난 시절의 무늬와 함께 그 결이 더욱 깊어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지난 9월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 직무를 마친 승효상은 <경향신문> <중앙일보>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펴낸 새 책에서 도시와 건축이 품어야 할 ‘공공성’의 가치를 성찰한다. 로마제국 군단의 주둔지에서 출발한 서양의 도시들은 주변의 환경을 적으로 간주해 평지 위에 해자를 파고 성벽을 두르는 식으로 봉건적 계급구조를 품은 공간을 건축했다. 그 뒤 20세기 모더니즘의 영향은 주어진 땅을 계급적 위계에 따라 평면분할하는 천편일률적이고 인공적인 유토피아 ‘마스터플랜’을 꿈꾸게 했다. 그러나 결국은 디스토피아에 그친 도시와 건축의 역사를 성찰하며, 지은이는 ‘메가시티’(거대도시)가 아닌 ‘메타시티’(성찰도시)의 개념을 역설한다. “우리가 살았던 터전을 깡그리 지우는 개발보다 과거의 기억을 유지하는 재생이란 단어가 적합하며, 전체를 바꾸는 마스터플랜보다는 부분적 환경 개선으로 주변에 영향을 주어 전체적인 변화를 이끄는 도시침술(침 놓듯 작은 공간으로 도시 전체를 바꾸는 것)이 더 유용하고, 일시적 완성보다는 더디지만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만드는 생성과 변화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이런 성찰은 골목과 마당, 국내외의 구체적인 공간들에 대한 사유의 편린들에 한결같이 녹아들어있다. 10월13~20일에 승효상의 주택 건축을 주제로 한 <열두 집의 거주 풍경>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진화랑’에서 열린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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