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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거친 수컷들의 세계와 구원의 여신

등록 2016-10-20 20:09수정 2016-10-20 20:37

잠깐 독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예담·1만3000원

도입부가 그야말로 ‘영화적’이다. 문신으로 뒤발한 건달들 몇이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서 호출을 기다리고 있다. 두목에 얽힌 믿기 힘든 무용담을 주고받는 동안 이들을 ‘현장’으로 실어다줄 승합차가 도착한다. 건달들이 각목이며 쇠파이프, 장도리 같은 ‘연장’을 챙기고 우루루 일어서는데 그 가운데 한명이 엉뚱하게도 죽도를 들고 있다. 중간 보스는 그를 야단치고 대뜸 그들이 앉아 있던 파라솔을 뽑아 대신 들려준다. 내친 김에 테이블까지 들어서 다른 건달에게 건넨다. 늙은 편의점 주인이 뒤늦게 뛰쳐나와서는 골목을 빠져나가는 승합차의 뒤꽁무니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남은 의자를 발로 찬다….

천명관의 신작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얘기다. 이 작품을 포털에 연재하는 동안 게시판에는 영화로 만들어 달라는 독자들의 댓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건달 여러 무리가 등장해 각축을 벌이는데다 세미 포르노 영화 제작 현장이 묘사되고 예기치 않은 유머 코드가 소설 곳곳에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천 연안파의 양사장을 중심으로 밀수 다이아몬드를 노리고 전국 각지의 건달들이 몰리고, 늙은 두목은 어쩔 수 없는 노화와 무상감에 시달리며, 어리고 순박한 건달은 두목의 심부름을 갔다가 우연히 다른 건달 두목 소유인 수십억짜리 종마를 훔쳐서 몰래 키우게 된다. 여기에다가 도박 빚을 갚고자 강도 짓을 하는 대리운전 기사들, 삼류 포르노 영화 감독, 조선족 마사지사로 행세하는 유흥가 출신 여성, 감옥에서 만난 남자를 사랑하게 된 조폭 중간 보스 등이 얽히고 설켜 한바탕 난장을 펼친다.

“돈만 주면 언제든 각목을 들고 달려올 비정규직 건달들이 뒷골목에 넘쳐났다. 바야흐로 건달들도 청년실업의 위기를 겪는 중이었다.” “인천의 노회한 건달은 바야흐로 노화와 투쟁하는 중이었다.”

소설은 수컷들의 벌거벗은 욕망을 좇지만, 그 배후에 있는 결핍과 페이소스를 놓치지 않는다. 유일한 여성 인물 ‘연희’는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인 동시에 구원의 여신으로서 거칠고 삭막한 세계를 보듬고 정화하는 구실을 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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