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킵 에스 손 지음, 박일호 옮김/반니·4만2000원 에스에프(SF)로 채운 프롤로그부터 장관이다. 세계지질위원회로부터 블랙홀을 탐사하라는 명령을 받고 수십억년의 항해를 벌이는 우주선 선장의 이야기다. 6년 만에 처음 도착한 곳은 태양 10배 중량의 작은 블랙홀 ‘하데스’다. 더 깊은 탐사를 위해 그는 차례로 3만100광년 떨어진 태양 100만배 질량의 ‘사기타리오’, 20억광년 거리의 ‘가르강튀아’를 찾아나선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이 아직 들여다본 적 없는 블랙홀의 기괴한 특성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된다. 주인공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웜홀’을 통해 처음 떠나왔던 40억년 전 지구로 돌아가는 데 바치기로 한다. 선장을 도와온 컴퓨터 던(DAWN)은 경고한다. “양자역학은 시공간을 초월해 열리는 미세한 웜홀의 존재를 예측하지만, 확대된 웜홀은 타임머신이 되기 직전 폭발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담긴 73쪽까지 읽고 나면, 아마도 책을 덮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덧 831쪽 짜리 극소형 블랙홀에 눈빛까지 빨려들어가고 있음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어지는 14개 장은 이 에스에프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짚는다. 아인슈타인을 출발로 현대 우주론과 양자역학이 ‘블랙홀과 시간여행’이라는 주제에 어떻게 접근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지구에선 40억년이 흘렀는데, 왜 선장은 150살에 불과한 지 같은 의문을 풀 단서를 제시한다. 천재들의 삶과 이론을 엮어 펼치는 솜씨가 대단하다. 영화 <인터스텔라> 자문을 맡았고, 중력파 측정에 성공한 ‘라이고 프로젝트’를 이끌어 올해 노벨상 문턱까지 갔던 킵 손이 지은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