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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작가 한수산과 징용공 한 서린 군함도를 거닐다

등록 2016-10-27 19:25수정 2016-10-27 19:57

한겨레 주관 군함도 문학기행
소설 주인공들 모습이 선연히
엔도 슈사쿠와 ‘나비부인’ 흔적도
한겨레 주최로 작가 한수산과 함께하는 군함도 문학기행에 참가한 이들이 23일 오전 일본 나가사키 하시마(군함도)에서 작가(맨 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한겨레 주최로 작가 한수산과 함께하는 군함도 문학기행에 참가한 이들이 23일 오전 일본 나가사키 하시마(군함도)에서 작가(맨 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정말 꿈만 같습니다. 제 소설을 읽으며 울고 웃었던 독자들과 함께 소설 무대인 군함도 땅을 밟게 되다니, 작가로서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1989년 도쿄 진보초의 책방에서 오카 마사하루 목사의 책 <원폭과 조선인>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10년의 취재와 거듭되는 집필 실패, 그리고 일차 출간과 개작으로 비로소 완성되기까지 27년 세월 동안 저로 하여금 이 소설을 놓지 못하게 한 것이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23일 오전 일본 나가사키 앞 섬 하시마, 일명 군함도. 한겨레 주관으로 독자 20여명과 함께 자신의 소설 <군함도>(전2권, 창비) 무대를 찾은 작가 한수산의 목소리가 떨렸다.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군함도 지하 탄광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조선인 징용공들의 고난과 싸움, 그리고 나가사키 원폭의 참상을 그린 소설이다.

궂은 날씨 때문에 전날은 배가 출항하지 못했다는 소식에 일행은 긴장된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23일 나가사키와 군함도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 물결이 높지 않아 일행은 우비 차림으로 섬에 내렸다. 지난해 7월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뒤 부쩍 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안내원의 설명을 듣는 한편에서 한겨레 기행단은 한수산 작가의 별도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이 서 있는 앞으로는 종합사무소가 있었고 선착장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지상과 우석 등 징용공들이 머물던 숙소가 있었으며 그 아래 방파제가 술집 여자 금화와 우석이 산책을 하던 곳입니다. 처음 이곳을 취재하던 무렵에는 군함도 징용공 출신 서정우씨와 어선을 빌려 타고 아무도 없는 섬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은 폐허가 된 섬 곳곳을 거닐다가 물과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던 제 모습을, 소설 주인공들과 함께 떠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작가는 “<군함도> 원작인 <까마귀> 일본어판이 나온 2009년 3월 군함도를 찾았을 때 물결 때문에 접안을 하지 못하고 배에 탄 채로 섬을 한바퀴 돌 때 안개 속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금화가 나한테 손을 흔드는 환영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일이 떠오른다”며 “그때도 작가로서 행복한 경험을 했지만 오늘의 비(非)산문적 경험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튿날인 24일은 거짓말처럼 날이 활짝 개었다. 기행단은 군함도가 건너다 보이는 나가사키 외곽 노모자키의 수선화공원과 곤겐야마 전망대에 올랐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지상이 안전한 피신처를 찾아 헤맨 곳이 이 어름이었다. 잔잔한 바다 건너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군함도는 평화롭다 못해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제 비바람 속에 답사한 군함도에서는 갇힌 징용공의 울분을 느낄 수 있었다면 오늘의 쾌청한 날씨는 섬에서 탈출한 지상이 느꼈을 자유의 신선한 공기를 상상하게 한다”고 작가는 말했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 날 오후 나가사키 평화공원 한구석에 있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찾은 일행.
오른쪽 사진은 같은 날 오후 나가사키 평화공원 한구석에 있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찾은 일행.
기행단은 이날 오후에는 군함도에서 탈출한 뒤 우석이 일했던 미쓰비시 스미요시 터널 공사장을 거쳐 <원폭과 조선인>의 지은이인 오카 마사하루 목사의 유지를 받들어 만든 오카 마사하루 평화자료관을 찾아 관장인 다카자네 야스노리 나가사키대 명예교수의 설명을 들었다. 이번 기행에 참가한 (사)동북아평화연대의 최병용 기획국장은 단체에서 마련한 성금을 다카자네 관장에게 건네기도 했다. 한겨레 기행단은 마지막 날인 25일엔 17세기 일본의 가톨릭 선교와 탄압 시기를 배경으로 선교와 전통의 충돌, 인간의 고통과 신의 침묵 등을 다룬 소설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 문학관을 방문했다. 기행 기간 중 일행은 이밖에도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과 평화공원,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인 구라바엔, 데지마와 메가네바시(안경다리) 등을 둘러보았다. 한수산 작가는 소설 무대 곳곳에서 작품 일부를 낭독하고 배경 설명을 곁들였으며 일본 문화에 관한 특강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녁이면 기행 참가자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소설 집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부산에서 밤차로 올라와 기행에 참여한 독자 정인현(43)씨는 “책으로만 알던 역사와 소설 배경을 현장에서 보니 한층 실감이 났다”며 “평소 좋아하던 작가의 육성 설명과 안내를 받으며 현장을 거닌다는 게 뿌듯하고 감동적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나가사키(일본)/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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