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연 찬미는 사람살이 거울로 구실
“감동이 아니라면 재미라도 있어야”
자연 찬미는 사람살이 거울로 구실
“감동이 아니라면 재미라도 있어야”
이정록 지음/창비·8000원 이정록의 새 시집 제목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은 영문학자 도정일 교수의 에세이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을 떠오르게 한다. 두 책은 장르도 다르고 제목이 놓인 맥락도 꼭 같지는 않지만, 양쪽의 목록은 어쩐지 많이 겹칠 것만 같다. 이정록이 ‘애정’하는 것들의 목록은 표제작에서 짐작할 수 있다. “자주감자가 첫 꽃잎을 열고/ 처음으로 배추흰나비의 날갯소리를 들을 때처럼/ 어두운 뿌리에 눈물 같은 첫 감자알이 맺힐 때처럼// 싱그럽고 반갑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눈물겹고 흐뭇하고 뿌듯하고 근사하고 짜릿하고 감격스럽고 황홀하고 벅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부분) 시인은 그것들 때문에 살고 또 운다고 말한다. 그것들이 반드시 자주감자 꽃잎과 감자알 같은 자연물만은 아니겠지만,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제비꽃 여인숙> 같은 그의 앞선 시집들 제목에 등장하는 식물과 동물이 그 목록에 포함되리라 짐작하기란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에 대한 관심과 찬미는 시집 곳곳에 보인다. “햇살동냥 하지 말라고/ 밭둑을 따라 한줄만 심었지./ 그런데도 해 지는 쪽으로/ 고갤 수그리는 해바라기가 있다네.// 나는 꼭,/ 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네.// (…) // 돌아보는 놈이 되자고./ 굽어보는 종자가 되자고.”(‘해 지는 쪽으로’ 부분) “느티나무는 그늘을 낳고 백일홍나무는 햇살을 낳는다.// 느티나무는 마을로 가고 백일홍나무는 무덤으로 간다.// 느티나무에서 백일홍나무까지 파란만장, 나비가 난다.”(‘생(生)’ 전문) 자연은 그 자체로 예쁘고 귀한 것이면서 동시에 사람살이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구실을 한다. 인용한 시들에서 한사코 햇살을 외면하는 해바라기나 느티나무와 백일홍나무 사이 파란만장을 나는 나비는 읽는 이에게 교훈을 주기도 하고 삶의 본질을 곱씹어 보게도 한다. 등단 이후 이정록이 자연과 생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웃기는 시를 쓰고 싶었다. 감동이 아니라면 재미라도 있어야지, 내 시 창작법의 전부였다.”(‘실소’ 부분)
새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을 낸 이정록 시인. “몽당연필처럼/ 발로 쓰고 머리로는 지운다/ 면도칼쯤이야 피하지 않는다”고 ‘시인’이라는 시에서 썼다.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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