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과 시대
아이린 카먼·셔나 크니즈닉 지음, 정태영 옮김/글항아리·2만3000원 대통령과 비선이 민주공화국의 국헌을 짓밟고 농락해왔음이 드러났다. 이런 때 헌법 가치를 지키고 그 품을 넓히려 분투해온 한 여성 대법관의 삶에 눈길을 주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노터리어스 RBG>는 현직 미국 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3)의 전기다. 지금도 20개씩 팔굽혀펴기를 하며, 밤샘도 마다 않는다. 그가 퇴화하지 않은 체력과 지성을 쏟아붓는 목표점은 헌법적 가치의 보호와 확장이다. 미국 대법원은 아들 부시 대통령 시기 오른쪽으로 급격히 기운 뒤, 아직 균형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여성, 유색인종, 동성애자 등 소수자 보호 장치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은 한층 거세졌다. 긴즈버그는 지치지 않고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의견)를 쓰며 맞서왔다. 흑인 투표참여를 돕는 유권자법 폐기를 정당화한 대법원의 ‘셸비’ 판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정도면 비에 젖지 않을 것 같다면서 우산을 내던졌다. 그러나 거센 폭풍이 밀려올 것이다.” 건강보험이 여성 피임을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하이로비’ 판결 때는 “대법원이 지뢰밭에 뛰어들었다”고 썼다. 헌법의 후퇴에 분노하는 미국 대중들은 이 ‘위대한 반대자’에 열광을 보낸다. ‘악명높은 RBG’라는 애칭이 붙었고, 그를 본뜬 캐릭터가 인기다. 책은 유대계인 그가 성·인종의 이중 장벽을 넘어서는 역정과, 결혼생활·취미 등 사적 영역에도 고루 관심을 보낸다. 그는 자신의 성취가 시대 흐름과 집단적 노력에 바탕한 것임을 강조한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사상 두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그를 지명했다. 그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준 여성운동에, 나아가 60년대 민권운동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스스로도 72년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산하 여성권익증진단(WRP) 창립을 주도한 바 있다. 사실상의 봉건적 세습 권력에 탐닉해온 생물학적 여성 대통령의 헌정파괴에 절망한 이라면, 벽을 부수고 헌법의 옹호자로 자리매김한 긴즈버그의 여정에서 위안과 희망을 찾게 될 것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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