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이진경 지음/휴·1만6000원 마르크스주의와 현대철학을 바탕으로 독특한 사유를 거듭해온 철학자 이진경씨가 불교에 대한 책을 펴냈다. 1년 동안 <법보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엮었는데, 연기, 무상, 인과, 무아 등 불교에서 다루는 25개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자기 식대로 설명한다. 10여년 전 몸담고 있던 지식공동체에서 한 후배와 심한 갈등을 겪었던 그는, 허공에 대고 욕을 퍼붓던 어느 노인의 모습에서 ‘아상’에 사로잡힌 자기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자신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세상사를 분별하며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얘기는 싫다고 쳐내고 맘에 드는 얘기만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건 뒤로 그에게 불교가 덮쳐왔고, 그동안 공부했던 과학이나 철학, 예술 등이 불교적 사유의 흐름 속에서 섞이고 변성됐다고 한다. 지은이가 그동안 붙들고 있던 철학적 주제들이 불교의 가르침과 톱니바퀴 물리듯 어우러진다. 가령 불교의 가르침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개념은 ‘연기’인데, 지은이는 이에 대해 “연기적 사유는 어떤 것의 본성을 그 외부에 의해 포착하는 ‘외부성의 사유’”라고 말한다. 존재의 내부에 불변의 본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조건에 따라 수많은 본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상’이란 개념은 ‘동일성’과 ‘차이’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차이를 무시하고 비슷한 것들을 하나로 묶어 불변하는 본체를 찾고자 하는 것이 ‘동일성의 철학’이라면, 동일해 보이는 것조차 끊임없이 차이를 낳고 있음을 직시하는 게 ‘차이의 철학’이다. 지은이는 ‘무상’을 통찰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차이의 철학’과 연결짓는다. 이처럼 불교의 개념에 기대어 외부, 차이, 공동체, 흐름, 탈주 등의 다양한 철학적 테마들이 종횡한다. 지은이는 “더 현대적인 삶의 방법으로 불교가 스스로를 불사르며 재탄생하는 사건을 고대한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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