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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팜파탈 결혼이주여성과 도시 출신 부부

등록 2016-11-10 19:17수정 2016-11-10 19:48

쓰엉
서성란 지음/산지니·1만3800원

서성란(사진)은 ‘한국소설의 결혼이주여성 서사 연구’로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여성을 주인공 삼은 그의 신작 소설 <쓰엉>은 박사 논문 주제에 이어진다고 하겠다.

스무살 많은 남편과 홀시어머니가 있는 한국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시집 온 쓰엉. 자식을 낳으라 성화 부리며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키던 시어머니는 의문의 화재로 세상을 뜨고, 그 화재로 버섯 농사 기반도 날려버린 남편 종태는 절망을 술로나 달래는 참이다. “여전히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그녀는 술을 마시는 일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편을 먹이기 위해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하는 처지였다.”

서성란 소설가
서성란 소설가
중고 소형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일거리를 찾는 쓰엉에게 얻어 걸린 일이 도시에서 온 커플 이령과 장규완이 새로 지어 사는 ‘하얀집’의 가사 도우미. 소설가 이령의 매력과 관능에 사로잡힌 문학평론가 장규완은 이령의 바람에 따라 시골 마을로 이사한 터였다. 그러나 어느날 나비를 좇아 숲에 들어갔던 이령이 무언가 큰 사고를 당한 뒤 실어증에 걸린 듯 입을 다물고 소설도 쓰지 못한 채 다락방에 틀어박힌다. <쓰엉>은 장규완과 이령, 쓰엉과 종태, 그리고 하얀집의 이웃집 벙어리 사내 등 다양한 시점을 동원해 쓰엉을 둘러싼 인물들의 욕망과 비밀을 부조해 낸다.

“장은 여자의 목에 두 팔을 두르고 입술에 입술을 포갠다. 여자는 눈을 감지 않는다. 파프리카 속살 같은 여자의 입속으로 혀가 빨려 들어가면서 장의 머리와 목, 가슴이 차례로 뜨거워졌다.”

소설 도입부에서 장규완은 쓰엉을 상대로 에로틱한 꿈을 꾼다. 자신의 욕망과 관능의 지향점이었던 이령이 ‘다락방의 미친 여자’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두어 버린 뒤, 새로운 대상을 찾은 셈. 그러나 소설 말미에서 “두 손으로 여자(=쓰엉)의 목을 감싸고 윤기 없이 말라 있는 입술에 입을 맞추”는 것은 장이 아닌 이령이다. 비록 꿈속 장면으로 처리되었지만, 밀짚모자를 쓴 채 이령의 휴대전화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는 쓰엉의 사진은 엄연한 현실. 더구나 “꿈속에서 그녀(=쓰엉)의 다갈색 이마에 입 맞추었다”는 또 다른 인물의 진술이 보태지면 사태는 사뭇 복잡해진다.

쓰엉은 결국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갇히는 신세가 되거니와, 책을 다 읽고 나면 결혼이주여성의 서사라기보다는 팜파탈적 매력을 지닌 여성의 상승과 추락을 다룬 비극을 지켜본 느낌이 든다.

최재봉 기자, 사진 산지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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