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재 지음/들녘·1만2000원 ‘여혐 담론’의 전후를 살피는 책들이 다수 출간을 기다리는 가운데 나온 이 책은 일종의 신호탄이다. 철학자 이현재(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인문한국 교수)는 메갈리아(메갈)의 여성혐오 담론에 불편함을 느꼈다 고백한다. 강력한 이분법을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염려됐거니와 성적 대상화에 대한 비판이 또 다른 규제주의나 성 엄숙주의로 갈 기미도 보였기 때문이다. 기존 페미니스트(‘꼰대’)가 해준 게 무엇이냐고 되묻는 몇몇 메갈리안들을 접한 뒤 이론적 개입조차 주저했다. 하지만 결국 책은 쓰였다. 다름을 인정하며 소통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여성혐오, 그 후>의 중심 개념은 ‘비체’(卑/非體·abject)다. 어떤 존재를 ‘무엇이다’(A)라고 규정하는 대신, ‘무엇이 아니다’(~A)라고 말하는 방식으로서 비체는 기존 언어, 질서로 파악되지 않는다. 뭔지 알 수 없어 공포감을 주며 더럽다 치부되는 존재다. 지은이는 페미니즘의 역사가 이렇게 기존 개념으로 잡힐 수 없는 비체들의 움직임으로 진행돼왔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왜 ‘주체’도 아닌 비체인가? 페미니즘은 여성이 타자성을 벗고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질문해왔지만 남성을 타자로 배제하는 한, 여성주체의 탄생 또한 축복할 만한 것은 못 된다. 해서 여성은 누군가를 타자로 만들지 않는 동시에 자신의 타자화(대상화)를 극복해야 하는 곤경에 처한다. ‘비체’는 이를 타개하는 전략이다. 메갈 등의 미러링이 성공했는지 의문이지만, 지은이는 “그녀들”을 비체로 호명하며 말걸기를 시도한다. 기존 페미니즘을 거부하면서도 페미니즘 전략을 수행하는 이들의 혼종성에서 ‘비체되기’를 발견한 까닭이다. 지금까지 비체의 전략적 사례는 여럿이었다. 크레온 앞에서 더 남성스러운 목소리로 발화하는 안티고네(주디스 버틀러), 자기 안의 남성성을 감추는 ‘가면쓰기’(조앤 리비에르), ‘잡년’처럼 야한 옷을 입고 행진하는 여성(슬럿워크) 등이다. 특히 ‘재전유(재의미화)하기’는 비체의 필수적인 언어화 전략. 재전유는 퀴어 퍼레이드, 잡년 행진이란 말에서 보듯 멸시를 담은 호명을 되받아치며 말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는 일이다. 도시화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다수의 급진적 타자를 만날 수밖에 없고, 여기서 분노나 혐오가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여초 카페’ 회원들은 여성 소비자(된장녀)인 동시에 착한 여자(개념녀)도 아니고, 남성스럽게 분노도 폭발하는 ‘듣보잡’이다. “경계를 지키려는 남성에게 이 여성들은 그야말로 ‘잡년’일 수밖에 없다.” ‘○○은 무엇이다’라고 정의내리는 것은 권력이다. 하지만 비체인 여성은 ‘개념녀’로 권력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반면, 여성혐오자들의 언설은 자아가 무시받은 경험을 내세우며 타자의 인정을 강력히 요구(악셀 호네트)한다. 메갈과 일베의 차이로 읽힌다. 지은이는 새 여성 비체를 곧바로 페미니스트라고 위치시키지 않는다. 각자 소리내던 비체가 페미니스트 집단 운동의 토대를 갖추려면 ‘소리’에 머물던 것을 ‘언어’로 바꾸어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스트 메갈’ 시대에 필요한 윤리로서 지은이는 공감(co-feeling)을 제안한다. 공감은 “판단, 관찰”이 아닌 “타인의 삶에 참여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때문에 책은 메갈, 메갈을 멸시하는 여성, 냉담한 페미니스트 들에게 더욱 강하게 호소하는 듯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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