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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권력 순종 강요하는 도덕교육 폐지를”

등록 2005-11-04 17:46수정 2005-11-05 16:32

민주화 이후를 살아가는 요즘 중학생들도 도덕 교과를 통해 국수주의와 파시즘의 이념을 강요하는 ‘국가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은 입학식에서 교복을 차려입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중학생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민주화 이후를 살아가는 요즘 중학생들도 도덕 교과를 통해 국수주의와 파시즘의 이념을 강요하는 ‘국가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은 입학식에서 교복을 차려입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중학생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김상봉 교수 ‘도덕교육의 파시즘’ 서 주장

현행 중등학교 도덕 교과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도발적 문제제기다. <도덕교육의 파시즘>(도서출판 길)에 그 이유를 낱낱이 적었다.

“현행 도덕 교육은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이 만든 작품”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전 정권은 1981년 서울대에 국민윤리교육과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 학과에 도덕교사 양성·교과과정 개발·교과서 집필 등의 권한을 부여했다. 도덕 교과를 정권이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민윤리>라는 과목명이 <도덕>으로 바뀌는 등 외형상 변화가 있었지만 “현행 도덕 교육은 전두환 시대 이래 도덕적 의무의 형태로 권력에 순종하도록 만드는 노예도덕과 파시즘의 교육에서 한걸음도 진보하지 못했다.”

전두환 정권이 만들고
서울대 국민윤리학과가 지탱
파업등 갈등 불온시
군사독재 과거 찬양도
국민윤리→도덕 외형상 변화뿐
20년간 ‘파시즘 교육’ 불변

도덕교육의  파시즘
도덕교육의 파시즘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는 절반이 예절 관련 내용이다. 여기서 예절은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갖춰야할 덕목이다. 반면 윗사람이 갖춰야할 도리는 말하지 않는다. 사회적 강자의 폭력과 횡포에 대해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자기를 지켜야할지도 말하지 않는다. “내가 타인에게 행하는 악을 멀리하는 것만큼, 타인이나 사회가 나에게 가하는 악에 저항하는 것 역시 중요한 도덕적 의무”인데도, 여기에 입다문다.

‘예절교육’의 본질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분명해진다. 중학교 2학년 <도덕> 교과서는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보장하기 위해 비협력자를 가려내 제재하는 일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고 말한다. 반면 경제정의에 대한 항목에서는 “(국가가 나서기 전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불우이웃을 돕고 자선행위를 한다면 얼마나 훈훈한 세상이 될까”라고 말한다. 군림하는 일에 능동적인 국가는 국민에 대한 책임 앞에서 돌연 무책임해진다.

파업을 대표적 사례로 들며 갈등을 불온시하는 도덕 교과서는 법과 규칙에 대한 맹목적 순종을 강요한다. 심지어 교과서에선 반드시 지켜야할 교칙의 사례로 복장 규정을 든다. “토요일엔 자유복을 입는다. 다만 모자 달린 셔츠나 점퍼, 끈달린 바지, 꼭 끼는 혐오스런 바지를 착용할 수 없다. 삭발·염색·파마를 하거나 무스나 스프레이 등을 하지 않는다. 슬리퍼, 신사화, 굽높은 신발, 가죽샌들, 장화 등의 신발을 금한다.”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는 아예 군사독재의 과거를 찬양한다. 새마을 운동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꼽는다. 새마을 운동, 정의사회 구현, 신한국 건설, 제2건국운동 등을 “도덕공동체의 붕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제시한다.

가르치는 방식도 문제다. “교과서는 ‘이래야 한다’는 명령과 당위 아래 촘촘하게 모범답안을 제시하면서, 스스로 느끼고 결단할 수 있는 자율적인 도덕적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김 교수는 “우리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사이비 도덕을 가르친 사람은 전두환 정권 이후의 서울대 국민윤리학과 교수들이었다”고 지목한다. 교과 이름이 <도덕>으로 바뀐 뒤에도 ‘국민윤리’를 고집하는 학과다. 김 교수는 “이제 그들로 하여금 더이상 국민들의 정훈장교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교수의 대안은 “자신에 대한 긍지와 타인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보편적 정의감과 인류애로 나아가도록”하는 참된 도덕교육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인간의 타고난 천부적 도덕성을 왜곡하며 참된 도덕을 모욕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현재의 도덕교육은 하루빨리 폐지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체불명의 ‘국민윤리교육학’이란 학문체계도 철학을 기반으로 삼은 성찰의 윤리학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학교 가치중심 교육 전환…도덕교과만의 존재이유 없어”

현장 교사들이 말하는 도덕교육

현행 도덕 교과는 군사독재의 과거와 떼놓을 수 없다. “단지 생활실습 교육의 위상만 갖고 있던 도덕·윤리 과목은 박정희 시대 들어 <국민윤리>라는 별도의 교과목으로 독립했고 이후 모든 교과목 가운데 수위 과목의 지위까지 얻었다.”(홍윤기 동국대 교수)

전두환 정권은 이를 체계적인 ‘국가 이데올로기’ 교과로 만들었다. 민주화 이후에야 <국민윤리>라는 교과목 이름이 사라졌다. 현재 중등교과 과정에서 <도덕>은 중학교 1~3학년은 의무, 고등학교 1학년은 선택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고등학교 2학년 이후에는 <윤리와 사상> <전통윤리> <시민윤리> 가운데 선택해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영록 교사(인천 부평공고)는 “대학입시와 관련이 적고 다른 사회교과보다 그다지 재미도 없는 도덕 교과를 선택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고 전한다. 전국도덕교사모임 연구국장이기도 한 전 교사는 현행 도덕 교과에 대해 “노골적인 정권 홍보는 줄어들었지만 애국의 덕목을 나열만 하고 이를 성찰하는 과정이 빠져 있는 등 여전히 국가주의적 요소가 교묘하게 드러나 있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장교사는 “다른 교과목들이 대부분 가치 중심 교육으로 전환하면서 도덕 교과만의 존재이유가 옅어지고 있다”며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쪽으로 도덕 교육이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무엇을 가르쳐야할지 혼란스러워진 도덕 교과서는 엉뚱한 쪽에서 특화의 내용을 찾고 있다.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의 경우 절반이 통일문제를 다루고 있다. 김상봉 교수는 “분단과 통일의 문제는 ‘도덕’의 차원이 아니라 당연히 사회과학의 문제이며 사회교과에서 제대로 다뤄야할 내용”이라고 짚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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