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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적인, 지극히 한국적인 번역 소설 둘

등록 2016-11-24 19:37수정 2016-11-24 20:15

영어소설 ‘소주클럽’, 불어소설 ‘속초…’
거제와 속초 배경에 한국인들 등장
‘한국문학’의 범주와 경계 묻게 해
소주 클럽
팀 피츠 지음, 정미현 옮김/루페·1만3800원

속초에서의 겨울
엘리자 수아 뒤사팽 지음, 이상해 옮김/북레시피·1만2000원

문학의 ‘국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언어다. 문학이 언어로 이루어지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은이의 국적 또는 혈통 그리고, 소설인 경우, 다루는 이야기의 배경이 아닐까. 어떤 인물이 등장하고 무대는 어디인지 같은 것 말이다. ‘한국 소설’이란 한국 작가가 한국어로 쓴 소설을 가리키며 한국인이 한국을 배경으로 펼치는 이야기이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이런 소설들은 어떨까. 거제도를 배경으로 한국인 가족이 등장하지만(그 중 한사람은 미국인 사위다) 지은이는 미국 작가고 영어로 쓰인 <소주 클럽>, 그리고 속초가 배경이며 프랑스-한국 혼혈 여주인공과 프랑스인 남자 만화가가 등장하는 혼혈 작가의 프랑스어 소설 <속초에서의 겨울>. ‘한국 문학’의 범주와 경계에 관해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이 두 소설이 나란히 번역 출간되었다.

<소주클럽>의 팀 피츠.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루페
<소주클럽>의 팀 피츠.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루페
팀 피츠의 소설 <소주 클럽>의 화자는 부산에 살면서 영어로 소설을 쓰는 한국인 작가 홍원호(이 소설만큼이나 흥미로운 정체성이다!). 그가 형의 전화를 받고 거제 부모님 집으로 가게 된다. “알코올중독자에다 오입쟁이에다 형편없는 아비”인 아버지가 또 바람을 피우다 들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고 어머니는 이혼하겠노라며 집을 나갔다는 것. 어부로서는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은퇴한 뒤에는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방과 술집을 순례하며 주색에나 탐닉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평생을 당했으면서도 누군가를 챙기고 거둬 먹여야 하는 성정과 빼어난 요리 솜씨로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 어머니, 원호의 소설로 영어 학습 교재를 만들려는 사업 구상에 여념이 없는 성형 중독자 여동생과 그의 미국인 남편…. 이들과 좌충우돌하는 한편 쓰던 소설에 대한 고민도 놓지 못하는 원호에게 아버지가 명령에 가까운 제안을 한다. 독도로 참조기를 잡으러 가자는 것, 그것도 아버지만큼이나 질이 나빠 보이는 ‘소주 클럽’ 일당과 함께. 그러나 일본이 영유권 분쟁 대상으로 삼는 독도에 간 일행에게는 예정했던 물고기 잡이 말고도 다른 속셈이 있었다….

“어머니는 찐 고구마 세 개를 넣는다. 그렇게 하면 막걸리의 끝맛이 살짝 달라진다. 입 안에서 막걸리 맛이 사라질 즈음 고구마 맛이 나 여기 있소 하고 슬쩍 나타난다. 짜잔! 요술이 따로 없다. 이 막걸리는 속 쓰림에 직방이다. 노글노글 긴장을 풀어주며 예민한 식도 벽을 달래주는 데는 우리 엄마의 고구마 막걸리만 한 게 없다.”

미국인 작가의 막걸리 예찬을 듣고 있자면 어쩐지 기분이 묘해진다. 한국에서 5년간 살았고 지금은 한국인 부인과 함께 미국에서 사는 작가는 집에서 직접 막걸리를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이 독특한 소설은 원고 상태로 번역 출간 계약이 맺어졌으며 결국 미국 현지에서보다 한국에서 먼저 책으로 나왔다.

<속초에서의 겨울>을 쓴 엘리자 수아 뒤사팽. 북레시피
<속초에서의 겨울>을 쓴 엘리자 수아 뒤사팽. 북레시피
<속초에서의 겨울>의 지은이 엘리자 수아 뒤사팽(24)은 소설 주인공처럼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파리와 서울, 스위스를 오가며 자랐다. “프랑스인 아버지가 엄마를 유혹하고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 지 23년,”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주인공은 속초의 한적한 펜션에서 요리와 청소 일을 한다. 영감을 찾아 고향 노르망디와 비슷한 속초에 온 중년 프랑스인 만화가 얀 케랑이 그의 앞에 나타나면서 둘 사이에는 섬세한 감정의 기류가 흐르고, 그것은 손을 스치거나 무릎을 맞대는 식의 수줍은 스킨십에 얹혀 전달된다. 간결한 선으로 표정과 행동을 표현하는 만화처럼, 짧은 장들로 이루어진 소설에서는 이미지와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여자의 성적 조바심과 나이 든 남자의 펜화 작업이 포개지면서 에로틱한 긴장을 빚어낸다.

“그는 나에게 내가 모르는 뭔가를, 세상 반대편에 있는 나의 일부분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었다. 그의 펜 아래, 그의 잉크 속에 존재하는 것, 거기에 몸을 담그는 것, 그가 다른 모든 여자들을 잊도록.”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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