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은 어떻게 사고하는가
리처드 포스너 지음, 백계문·박종현 옮김/한울·4만9500원
“우리가 법관들에게 ‘선입견이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아마 많은 법관이, 아니 거의 대다수 법관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대답에 우리는 얼마만큼의 무게를 두어야 할까?”
<법관은 어떻게 사고하는가>를 시종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이 질문에 함축돼 있다. 그리고 곧장 답이 이어진다. “거의 무게를 둘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법관이 선입견을 가지고 재판을 하고, 판결을 쓴다? 저자 리처드 포스너(77)는 실제로 그렇다고, 적어도 미국 법원에서는 분명히 그러하다고 확언한다.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의 교수이면서 1981년 레이건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이래 줄곧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 중인 포스너는 한쪽 발을 법정에, 나머지 한쪽 발은 교단에 딛고 있는 흔치 않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법관의 의식세계와 사고방식을 파고든다.
책의 여러 곳에서 포스너는 법관이라는 직역이 터무니없이 신비화되어 있다고 거듭 지적한다. 법관은 명징한 삼단논법을 바탕으로, 사실을 법규에 적용해, 어떤 정치적·도덕적 고려도 없이, 객관적이고 일관된 ‘정답’을 도출할 수 있는, 고도로 훈련된 프로페셔널인 것처럼 언급되고 또 믿어진다.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이 직역을 신비한 세계로 남겨놓는 것은 법관들에게 어느 모로 보나 손해일 리 없다. 그런데 실상이 그러하다면, 법관의 일이 ‘1+1=2’ 수준의 단순명료한 것이라면 그들의 사고방식은 학문적 연구 이전에 궁금해할 이유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이 재판이고 판결이라면 ‘알파고’나 그 후속 기종에 맡기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미국에선 연방대법원조차 ‘법의 지배’를 역설하는 ‘법규주의’에 점차 경도되고 있다고 비판받는다. 사진 왼쪽부터 엘레나 케이건, 존 로버츠(대법원장), 앤서니 케네디,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한겨레> 자료사진
저자의 문제의식은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법관에게 법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단순한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법 이외의 내용은 법관이 자신에게 주어진 재량으로 채우게 되는데, 주 구성 요소는 선입견이다. “법관들 중 다수는 자신의 판결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 적이 없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선입견이 판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베이즈의 정리’로 뒤집힌다.”
토마스 베이즈가 고안한 결정이론, 즉 ‘베이즈의 정리’(Bayes’s theorem)를 빌려온 포스너는 비슷한 사건의 증인을 지켜본 기억, 증인이 속한 사회적 계급의 정직성에 대한 일반적인 감각, 심지어 증인이 증언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걸음걸이까지도 법관의 심증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전확률’, 즉 선입견이라고 말한다. 이 사전확률은 다시 증인의 증언 이후 반대심문과 증거조사, 그 증언에 부여하는 법관의 판단, 즉 ‘사후확률’에 영향을 끼친다. 절차가 진행되면서 사전확률이 사후확률을 변화시키긴 하지만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한다.
판결엔 그래서 법관의 경험, 기질, 이데올로기는 물론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호불호 등 여러 요인이 무의식중에 반영된다. 거기에 인식상의 착각,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법관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든가 원고 또는 피고의 종교나 인종이 마음에 안 든다든가 하는 사건과 무관한 감정 또는 반응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사법적 심의는 일반의 상식보다 훨씬 내밀한 과정이며, 그 주체인 법관에게 제시된 고정불변의 기준, 중립적 잣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실상에 눈 감은 채 판결은 법에 따라 대부분 결정된다고 주장하면서 ‘법의 지배’를 역설하는 ‘법규주의’(legalism)는 위선이라고 포스너는 통박한다.
그의 대안은 ‘분별 있는 법실용주의’인 것처럼 보인다. 법관이 여러 외부 요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그런 실상을 솔직히 ‘고백’하고, 법 해석을 할 때 ‘사려깊고 비당파적인 입법자라면 이 법을 어떻게 해석했을까’를 부단히 자문하라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더 나은 법관, 좀 더 믿을 수 있는 법관은 당연히 ‘선판례의 원칙’에 그냥 굴복하지 않으며, 실용주의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며, 존중받기 힘든 입장을 주장하고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이 믿는 바를 주장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법규주의 왕국’인 미국은 재판에 돈(비용)이 많이 들면서도 결과가 불확실한 것으로 악명 높다. 재판 결과에 대한 만족도도 당연히 낮다. 그 정점에 있는 연방대법원도 만장일치 비율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지면서 법규주의화와 획일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보수화와 일맥상통한다. 포스너는 이런 현실을 바꾸는 개혁의 첫 단추가 사법행태, 즉 법관의 재판행위를 바꾸는 일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고 말한다. 마치 표준기술인 것처럼 인식되는 법규주의적 해석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너는 법원에서 얻은 실무 경험과 학교에서 쌓은 지적 자산을 적절히 활용해 독자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한다. 방심할 만하면 튀어나오는 법률 용어와 판례법에 크게 의존하는 미국의 법원제도가 다소 낯설지만, 그의 주장은 우리 사법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