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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부단히 진화하는 실체, 주권

등록 2016-12-01 19:34수정 2016-12-01 20:07

주권이란 무엇인가
로버트 잭슨 지음, 옥동석 옮김/21세기북스·1만6000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구절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주권’이란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지만, 딱히 주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책은 여태 없었다.

<주권이란 무엇인가>는 그런 ‘수요’에 답하는 일종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로버트 잭슨 보스턴대학교 교수(국제관계와 정치학)가 2007년에 쓴 이 책은 중세까지도 없던 주권이란 개념이 어떻게 생겨나 지금껏 변천해 왔는지, 그 본질은 무엇이며 앞으로의 진화 방향은 어떻게 예상되는지 등을 두루 짚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주권 개념의 사상사’에 가깝다.

우리 헌법의 주권 조항은, 이 책에 따르면 지금껏 가장 발전된 형태인 ‘국민주권’ 개념을 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법전을 통해 조우한 우리와 달리 유럽에서는 창과 방패가 부딪치는 열전을 겪어내며 한걸음씩 진전했다. 주권 혹은 이를 실현한 주권체의 개념은 16~17세기 교황을 정점으로 중세를 호령하던 초국가적 신정주의에 반발하는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의 권위 아래서 하나’를 외치던 가톨릭 질서에 대항하기 위해 그 시대 국왕과 통치자들은 새로운 구호를 고안해낸다. “국왕은 자신의 영토 아래서 황제다.”

일정한 영토 안에 모여 사는 국민을 기반으로 성립된 주권 개념은 마침내 중세와 근대의 경계를 가르는 이정표가 되었지만, 그 이후의 진화 역시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영국의 제임스 1세처럼 교황이 떠난 자리를 대신 차지한 왕에 맞서고, 국민을 학대한 찰스 1세의 시신을 넘어야 했다. 알렉시 드 토크빌이 극찬해 마지않은 미국의 대중주권체도 독립혁명과 남북전쟁의 유혈 위에 세워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분명해진 주권의 개념은 동일한 관할 영토 안에서 독립성과 자율 통치를 담보하는 최고·최후의 권위다. 이를 헌법적 개념으로 구현한 것이 주권체다. 그래서 주권체는 국가의 최상위 권위로, 그 통치방식을 뒷받침하는 정치적·법률적 기반을 뜻한다.

지금 시대 최선의 형태로 보이는 국민주권, 민주주의 주권체를 온전히 실현하는 방법은 주권자가 스스로 뽑은 정치 엘리트들에게 ‘해명책임’(Accountability)과 ‘설명책임’(Answerability)을 다하라고 부단히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국가의 권력장치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이를 책임감 있게, 또 사려 깊게 행사하는 것이다. 어떠한 헌법도 이를 보장할 수 없다. (…)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권력을 남용할 유혹이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처음 출현부터 지금까지가 그러했듯 앞으로도 주권·주권체 개념은 계속해서 진화할 테지만, 지은이는 그 진행 방향이나 방법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진화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움직인다는 식의 목적론적 인식이나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총의로 결정해야 할 일이다.

책은 특정한 학설이나 사변적 논의에 치우치지 않고 개괄적 해설이라는 본래 목적에 충실히 전개된다. 대학생, 일반 시민이 교양서로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어색하리만치 중복되는 비슷비슷한 내용은 번역하는 과정에서 정리하는 편이 좋았을 성싶다.

강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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