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세기
백민석 지음/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10년 절필’을 끝내고 2013년 문학으로 돌아온 백민석(사진·45)이 복귀 후 첫 장편 <공포의 세기>를 내놓았다.
첫 장면부터 압도적이다. 뉴밀레니엄이 시작되고 5분 정도 지난 시각, 파티가 한창인 레스토랑에 한 “어린 친구”가 들어선다. 사장이 지폐를 세고 있는 별실로 잠입한 그는 휴대용 칼로 사장의 혀를 가르고 입천장에 구멍을 낸 뒤 119에 신고까지 하고는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온다. 이 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아이는 복도 난간에 왁스 칠을 안 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던 터. 사건을 저지른 직후 이 아이 ‘모비’는 “공포의 왕이 온다”고 혼자 중얼거리는데, 단순한 원한이 아니라 공포의 탄생과 확산을 다룬 이 소설의 주제가 그 말에 담겼다.
밀레니엄 시작 직후 모비의 등장으로 문을 연 소설은 이어서 경, 심, 령, 효, 수 다섯 사람의 2010년대 중반 현재 상황을 차례로 보여준다.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고 모비와도 직접 연결되지 않는 이 다섯 사람의 공통점은 극도의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이후 소설은 모비의 탄생 및 성장 이야기와 다른 다섯 사람의 분노의 축적과 분출 이야기를 오가며 진행된다. 개척교회 사이비 목사와 신도 사이에서 잉태돼 의붓아비 슬하에서 자란 모비는 엄마의 영향으로 성경을 탐독하면서 스스로를 예수라 여기게 된다. ‘전지전능한 심판자 예수’의 역할에 자신을 맞춘 모비가 아무런 윤리적 자각도 없이 갖은 범죄를 저지르는 한편에서, 망령에 사로잡힌 다섯 인물 역시 극단적인 방식으로 각자의 분노를 표출하면서 혼란과 공포가 만연하게 된다. 모비와 다섯 인물을 매개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불의 혀’ 이미지. 다섯 인물이 혀에 책과 열쇠 문신을 새기고 제 몸에 불을 지른 채 각자의 희생자를 끌어안고 타 죽는 마무리는 그 이미지의 생생한 구현이다. 이런 사태를 두고 모비는 “나의 불이 세상을 깨울 거야”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세상은 지옥인 것.
“세상은 살아서 지옥이었다. 지옥이 아닌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그리고 그 극소수가 자신의 삶을 지옥이 아닌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공포의 세기>는 잡지 연재를 거쳐 책으로 나왔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는 “<공포의 세기>의 인물들은 과장되게 말하면, 정신적 묵시록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글 최재봉 기자,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