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전집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상섭 옮김/문학과지성사·12만원
서거 400주년이 허전할 뻔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가 타계한 지 올해로 꼭 400년. 셰익스피어 평전 <세계를 향한 의지>(스티븐 그린블랫, 2004)가 번역 출간되었고 셰익스피어 작품을 각색한 연극과 오페라, 발레 등의 공연이 활발하게 이어지기는 했어도, 문학·출판 쪽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햄릿>을 비롯한 이른바 4대 비극과 <소네트> 등이 새롭게 번역되긴 했지만 서거 400주년의 무게에 어울리는 작업이라 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영문학자 이상섭(79) 연세대 명예교수가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번역해 한권에 담은 <셰익스피어 전집>이 해를 넘기기 전에 나온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38편에다 소네트(154편)를 비롯한 시 6편 해서 모두 44편을 완역해 실었다. 국배판(255㎜×290㎜) 1808쪽(7㎝ 두께) 양장본에 좌우로 2단 편집을 해서 방대한 분량 원고를 한권에 갈무리할 수 있었다.
정년퇴직 뒤 10년에 걸쳐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번역해 <셰익스피어 전집>을 내놓은 이상섭 명예교수. “자신의 희곡 대부분을 운문으로 쓴 셰익스피어는 ‘시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섭 교수 제공
한국어로 된 최초의 셰익스피어 전집으로는 1964년 탄생 400주년을 기념해 나온 김재남 번역본이 꼽힌다. 그러나 이 책은 절판된 지 오래고, 신정옥이 옮긴 문고본 형태 전집(전예원)이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전집이었다. 김정환 시인이 40권 예정으로 2008년부터 내기 시작한 전집(아침이슬)은 23권까지 나온 2013년 이후 작업이 중단된 상태고, 이상섭 교수의 제자인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2014년부터 내고 있는 민음사판 전집과 한국셰익스피어학회가 내는 전집은 완간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 한권짜리 셰익스피어 전집은 이상섭 교수의 <셰익스피어 전집>뿐이다.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희곡에서 산문이 아닌 운문, 그것도 5보격이라는 운율을 사용했으니 우리말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제대로 옮기려면 산문이 아닌 운문으로 번역해야만 그 텍스트의 의도와 매력을 더욱 잘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약강 2음절이 영어의 기본 운율을 이루듯 우리말도 4음절 2마디가 기본 운율을 이룬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약강 5보격(iambic pentameter)을 우리말의 4·4조와 그 변조(7·5조)로 옮기면 적어도 소리의 간결함과 가락이 주는 흥취를 느낄 수 있다.”(‘옮긴이 서문’)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시극’이라는 이런 신념에다 “무대에서 대사로 쓸 수 있을 만큼 간결하고 가락이 알맞아야 할 것”(‘옮긴이 서문’)이라는 판단에서 이 교수는 학문적 정확성에 매달리기보다는 듣기 좋고 발음하기 쉬운 무대용 대사로 번역하는 쪽을 택했다. 가령 <햄릿>의 저 유명한 대사는 이렇게 옮겼다.
“존재냐, 비존재냐,?그것이 문제다./ 억울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속에 참는 것이 고귀한 일인가,/ 만난의 바다에 팔을 걷어붙이고/ 저항하여 끝내는 것이 고귀한 일인가?/ 죽음은 자는 것, 그뿐이다. 잠으로써/ 육체가 이어받는 아픔과 온갖 병을/ 끝낸다 할진대, 이는 진정 희구할/ 행복한 결말이다. 죽음은 잠자는 것.”
그런가 하면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재능과 감각을 보여주는 특유의 말장난(pun)을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옮기고자 한 노력도 돋보인다. <베로나의 두 신사> 2막3장에서 “머뭇거리다간 밀물을 놓쳐”(You’ll lose the tide, if you tarry any longer)라는 팬시노의 재촉에 대한 랜스의 대답을 “‘미물’을 놓친대도 상관없어”(It is no matter if the tied were lost)라 새긴 것이 그 예다. 발음이 같지만 뜻은 다른 ‘tide’와 ‘tied’를 각각 ‘밀물’과 ‘미물’로 옮긴 것이다. 작품마다 따로 해설을 붙이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거의 매쪽마다 몇개씩 주석을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도운 점이 돋보인다. 정년퇴직 뒤 10년 세월을 전집 번역에 매달린 이 교수의 노력에다, 편집 작업에 2년여를 꼬박 투자했다는 윤병무 문학과지성사 주간의 노고가 곁들여져 이 기념비적인 책이 빛을 보게 되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