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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수명 다한 ‘금본위제’ 대공황 불렀다”

등록 2016-12-08 19:41수정 2016-12-08 19:56

미 연준 부실 대처가 원인이라는
프리드먼 등 학계 통념에 ‘반론’
“유럽 경제위기도 20C 초 닮은꼴”
황금족쇄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박복영 옮김/미지북스·3만8000원

‘1929년 대공황은 왜 일어난 것일까.’ 학계의 전통적인 답변들은 이랬다. 과소 소비(수요), 과잉 생산(공급), 통화정책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 등등. 한동안 그 나물에 그 밥이 차려지던 해석판에 신메뉴를 들고나온 건 노벨 경제학상에 빛나는 밀턴 프리드먼과 안나 슈워츠였다. 이들은 1963년에 펴낸 <미국 화폐사>에서 기왕에 학계가 주목하지 않았던 통화당국의 역할, 즉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의 굼뜨고 방만한 리더십이 증시 폭락을 초유의 파국으로 몰아갔다고 설명했다.

‘통화주의’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각별한 대접을 받고 있는 이 분석 틀에 대해, <황금족쇄>는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연준을 국제적 참화의 장본인으로 본 프리드먼식 해석은 시야각을 미국 내로 좁혀 대공황이 왜 전 세계로 번져 나갔는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책은 금본위제의 포기 또는 붕괴가 금융안정 와해, 자본 도피, 세계 금융위기라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다는 학계의 또 다른 통념에도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유명한 말에서 제목을 따온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마디로 요약 가능하다. “세계 대공황의 핵심 원인은 국제 금본위제라는 고정환율제에 있다.” 후주를 합친 800쪽은 이 결론을 연역하는 마당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사반세기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한 금본위제(‘전전 금본위제’)는 정부의 정책의지에 대한 대중의 믿음, 이를 뒷받침하는 각국 중앙은행간 협력이 있어 정상 작동할 수 있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국가의 정책 당국은 중앙은행의 금 준비금을 방어하고 통화의 금 태환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취할 채비가 되어 있었고, 그에 대해 어떤 의심도 사지 않았다고 한다.

대공황이 계속되던 1932년 미국 뉴욕의 시립 급식소 앞에서 실직자와 노숙자들이 길게 늘어선 채 무료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대공황이 계속되던 1932년 미국 뉴욕의 시립 급식소 앞에서 실직자와 노숙자들이 길게 늘어선 채 무료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아이켄그린이 설명하는 메커니즘은 이런 것이다. 이들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어느 한 곳이 금 준비금을 잃어 환율이 약세로 돌아서면 자본 이득을 기대하는 자금이 해외에서 흘러든다. 정책 당국이 환율 강화 조처를 하면 해당 국가의 자산에 투자한 외국 자본은 이득을 얻는다. 기존 환율 유지를 위한 정책 당국의 의지가 신뢰받는 한 자본은 충분히 신속하게 유입됐고, 환율은 강세로 자동 전환돼 환율 안정이 이뤄졌다. 그런 점에서 금본위제를 정상 작동시킨 힘은 잉글랜드 은행의 헤게모니가 아니라 런던과 파리, 베를린이 함께 이끄는 ‘분산된 다극 체제’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 틀은 1차 세계대전 때문에 결정적 균열을 맞게 됐다는 것이 아이켄그린의 설명이다. 전쟁 채무가 발생했고, 특히 독일의 전후 배상금 문제가 국제적 협력 가능성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금본위제의 수호자인 중앙은행이 독립성 훼손을 의심받는 상황으로 몰렸고, 국제결제은행(BIS)마저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됐다. 전전 금본위제를 지탱해준 신뢰와 국제 협력이라는 두 개의 기둥이 바닥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에 대규모 무역 흑자 등으로 지위가 대폭 강화된 미국은 1924~27년 저금리와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세계 경제 회복을 도왔지만, 28년부터는 월가의 투기를 문제 삼아 돈줄을 죄기 시작한다. 이어 프랑스에 금이 대량 유입된 반면 다른 나라들이 금과 외환 준비금을 잃으면서 급기야 금 태환성이 위기를 맞게 됐다. 금본위제가 심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일부 유럽 국가와 많은 남미 나라들이 세금을 올리고 지출을 줄이는 긴축 정책을 도입했고, 그 여파로 1929년 들어서는 경기 후퇴가 전 세계적으로 뚜렷해졌다. 그해 10월29일 월가 대폭락은 공황을 촉발한 ‘방아쇠’ 구실을 했다는 설명이다.

대공황은, 역설적으로, “금본위제 포기 이후에야 회복이 가능해졌다.” 책의 제목은 세계 경제의 발목에 채워져 있던 국제금본위제의 은유다. 수명이 사실상 다했는데도 꾸역꾸역 붙들고 있던 금본위제가 결국은 ‘불난 집’에서 탈출조차 제때 할 수 없도록 만든 족쇄, 그것도 황금족쇄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금본위제의 포기가 불황만 악화시켰다는 학계 일부의 인식도 실제 증거와는 배치된다며 조목조목 비판한다.

1992년에 나온 책을 지금 다시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이켄그린은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써놓았다. “2009년 이후 유럽에서 (대공황 때와) 완벽하게 동일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목격 (…) 20세기 초 금본위제와 21세기 초 유로 시스템이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위기가 반복되는 한 이 책의 ‘유효기간’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1930년대 역사는 한국은행을 포함한 각국 통화 당국의 긴밀한 협력 필요성을 일깨우는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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