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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장군님, 어찌 그곳에 서 계신가요

등록 2005-11-06 17:42수정 2005-11-07 22:00

장군님, 어찌 그곳에 서 계신가요-‘서울의 기념인물과 장소의 역사성’ 논문 눈길
장군님, 어찌 그곳에 서 계신가요-‘서울의 기념인물과 장소의 역사성’ 논문 눈길
‘서울의 기념인물과 장소의 역사성’ 논문 눈길
서울은 3천년의 고도(古都)다. 말만 그렇다. 역사의 흔적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무언가를 기린다며 지어올린 동상과 비석과 기념관은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곳에 서 있다.

전우용 서울대 병원사 연구실 연구원이 이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썼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가 내는 학술지 <서울학연구> 최근호에 ‘서울의 기념 인물과 장소의 역사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전 연구원이 보기에 서울에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은 초라하다. “성문 두 개와 궁궐 하나를 빼고는 조선시대 유적으로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나마 남대문과 동대문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통과했던 ‘개선문’이다. 창덕궁은 일제가 조선 왕가의 ‘거주지’로 배려한 곳이다.

핵심도로라는 이유만으로
세종대왕 이름 붙이고
연고도 없는 곳에 이순신 동상…
역사적 인물 기린 동상과 길
체계없이 너무도 즉흥적인
600년 고도 서울 현주소

일제 강점과 한국 전쟁 등이 휩쓸고 간 서울을 ‘역사적으로’ 기억하는 일은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오늘날 서울에서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산만하고 비체계적이며 즉흥적이다.” 핵심도로라는 이유로 세종대왕의 이름을 붙이고 난데없이 여기에 이순신 동상을 세운 뒤, 정작 세종대왕 기념관은 홍릉에 세우고 그 동상은 아무 연고도 없는 덕수궁과 여의도 공원에 만들어 놓는 식이다.

현재 정부 또는 지자체가 관리하는 서울 시내 동상은 모두 41개다. 이 가운데 22개가 박정희 정권 때 세워졌다. 전 연구원은 “인물 및 장소 선정 과정이 철저히 임의적이고 일방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때문에 서울 도처에 자리잡고 있는 동상들은 왜 그 곳에 그 인물이 있어야 하는지 아무런 대답을 주지 못한다.”

동상 대부분은 한갓진 곳에 ‘숨겨져’ 있는데 일부는 아예 접근이 불가능하다. 정몽주 동상은 양화대교 북단 강변북로 방향 램프에 세워져있고, 이원등 동상은 한강대교 가운데 중지도에 세워져 있다. 기념관·표석·기념비 등도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윤봉길 기념관(양재동)과 도산기념관(신사동)은 해당 인물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 ‘마침 그 곳에 너른 땅이 있어’ 지어올린 경우다.

인물을 기념한 서울시 주요 간선도로
인물을 기념한 서울시 주요 간선도로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길 이름의 탄생배경은 더 기막히다. 2002년 현재 서울 400개 간선도로 가운데 인물 이름울 딴 것은 29개다. 이 가운데 12개가 해방 직후 명명됐다. 을지로와 충무로는 대한제국 시기 청과 일본의 근거지였다. 해방 직후 대중·대일 전쟁의 영웅인 을지문덕과 이순신의 이름을 각각 붙였다.

원효로는 일제 시대 명칭인 원정(元町)과 인근 효창원의 첫자를 따서 원효로로 명명해 결과적으로 원효대사를 기념하는 셈이 됐다. 불교계의 대표적 인물을 딴 거리가 있는데 유림의 대표가 없어서 안된다 하여 퇴계로를 명명하고, 뒤이어 퇴계와 쌍벽을 이루는 율곡로를 보탰다.

전 연구원은 “그나마 여기까지는 ‘우회적 해석’이라도 가능하지만, 60년대 이후에는 도무지 연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소파길은 어린이회관 옆이라 해서 붙은 이름인데, 회관이 자리를 옮긴 뒤에 거리 이름만 남았다. 양녕로나 효령로의 경우, 인근에 사당이 있다 해서 붙였지만, “(임금도 아닌) 이들을 시민 일반이 추앙할 대상인지 의문”이다. 고려대 인근의 인촌로, 서울교대 근처의 사임당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90년대 이후엔 아예 길 이름에서 ‘역사’가 사라지고 있다. 진달래길·백합길·감꽃길 등의 한글 이름길은 역설적이게도 “기념할만한 인물과 역사를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는 동안, 길 이름으로 활용할 수많은 (역사적) 재료들이 사장된 결과”다.

전 연구원은 “지난 수십년간 국가와 지방정부는 공원이나 시유지 자투리 땅에 즉흥적으로 동상을 세우고 즉흥적으로 새 도로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되풀이했다”며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는 일에 시민의 참여와 동의를 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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