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박광규 지음, 어희경 그림/눌민·1만8000원 1930년대 잡지 <별건곤>에 최유범의 추리소설이 실렸는데, 제목이 참 담대하다. <약혼녀의 악마성>. 대놓고 누가 범인인지 밝히고 시작한다. 한국에서 추리소설 용어도 생기기 이전 일이었다고 한다. 21세기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한 유명 미국 추리소설 표지에는 누가 봐도 의심스럽게 보이는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외모의 특징이 너무나 뚜렷한 그 인물은 실제로 범인이었다”. 독자와의 머리 싸움, 반전의 묘미를 생명으로 하는 추리 장르에도 가끔 버그가 낀다. 일본 추리작가 에도가와 란포는 1933년 <악령>을 잡지 연재 3회 만에 중단했다. 잡지가 재판을 찍을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는데 말이다. 란포의 구상과 비슷한 소재의 외국 작품이 번역되는 바람에 더 쓸 힘을 잃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문호 찰스 디킨스는 미스터리풍 소설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 연재 도중 숨졌다. 결말이 너무도 궁금했던 독자들이 강령술로 디킨스의 영혼을 불러내는 시도까지 벌일 정도였단다. 반면 1946년 매저리 보너의 <칼의 마지막 뒤틀림>은 출간 뒤 마지막 장이 빠진 것을 알아차린 출판사가 이 부문만 소책자로 만들었다. 구입 독자들에게 무료로 보내주겠다고 공지했지만, 신청자가 한 명도 없는 ‘의문의 1패’를 당했다고 한다. <미스터리는 풀렸다!>는 추리소설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엮었다. 추리 작가는 부모 후광을 입은 ‘금수저’가 드문 직업임을 보여주거나, 작품 속 탐정들의 주거 형태 분석 등 다채로운 접근이 흥미를 돋운다. 장르 팬들에겐 정리와 발견의 재미를, 문외한에겐 호기심을 안겨줄 것 같다. 현실이 추리물을 무릎꿇리는 요즘 시국이 변수겠지만. <주간경향> 연재물을 책으로 묶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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