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
최옥정 지음/예옥 펴냄·1만5000원
조선 중기 기생 시인 매창(1573~1610)의 삶과 작품에 대해서는 제법 잘 알려졌다. 그는 천민 출신 시인 유희경과 연인 관계였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으로 시작하는 유명한 시조는 유희경을 생각하며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매창은 또 허균과도 정신적 사랑을 나누어, 허균은 매창이 죽은 뒤 ‘계랑(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최옥정(사진)의 소설 <매창>은 이런 매창 삶의 얼개를 좇으며 세 사람의 만남과 이별에 살을 붙이고 숨결을 불어넣는다. 부안 관기 출신인 스무살 매창과 한양에서 문명(文名)을 떨치던 마흔여덟살 유희경은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를 영혼의 단짝으로 알아본다.
“매창은 유희경이 자신과 닮은꼴의 영혼을 가졌음을 알아차렸다. 재능과 이상이 자신을 지배하지만 뜻을 제대로 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시와 음악으로 잠재우려는 것이다.”
이런 동질감은 이내 사랑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 주는 구실을 시가 한다.
“시가 있었다. 멀어지려는 서로를 끌어당기고 너무 가까워지려는 서로를 적당한 거리에 두고자 하는 시가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도 떨어져 있기를 마다하고 시로써 말을 하고 시로써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적어도 매창의 처지에서는, 기약 없는 기다림의 사랑이었다. 임진란이 터지자 유희경은 의병으로 참전하고자 한양으로 올라가고 긴 세월이 흐르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이 전란에서 세운 공훈으로 그가 면천하고 벼슬을 얻었으며 혼인을 하고 자식까지 두었다는 소식만 들려온다. 매창은 다시 시를 쓴다.
“송백같이 굳은 맹세 하던 그 날은/ 사랑이 깊고 깊어 바다였건만/ 한번 가신 그 임은 소식이 없어/ 한밤중 나 홀로 애를 태우네”
이렇게 떠난 유희경을 속절없이 그리워하는 매창 앞에 허균이 나타난다. 매창 나이 스물아홉, 허균은 그보다 네살 위였다. 매창이 유희경의 정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허균은 정신적 사랑에 만족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남녀로서 서로에게 끌리는 본능을 억눌러야 했던 괴로움을 작중 인물 허균은 이렇게 토로한다.
“우리 둘 다 헛것을 신봉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너는 오지 않는 촌은(유희경)을 위해 수절하고, 나는 너를 잃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너를 놓아 주었으니 말이다. 우리 둘 다에겐 마음을 붙들어 맬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은 헛것이지만 헛것이 아니었지.”
헛것 같은 사랑에 들려 토해 낸 헛것으로서의 시가 소설 <매창>을 낳았다.
최재봉 기자, 사진 예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