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전 -부단한 자기 생 속에 예술을 꽃피우다
정옥자 지음/민음사·2만2000원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 -시대와 권력이 만들어낸 신사임당의 이미지 변천사
고연희 이경규 이숙인 홍양희 김수진 지음/다산기획·1만8000원
신사임당(1504~1551).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화가로 2009년 한국 화폐에 등장한 첫 여성 위인이다. 다음달 한·중·일 동시 방영을 앞둔 텔레비전 드라마 <신사임당-빛의 일기> 시작에 맞춰 신사임당에 관한 책이 다수 출간된 건, 앞으로 벌어질 본격적인 논란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그 중에서도 최근 나온 <사임당전: 부단한 자기 생 속에 예술을 꽃피우다>와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 시대와 권력이 만들어 낸 신사임당의 이미지 변천사>는 사임당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충실히 담아 단순히 드라마 기대감에 따라 출간된 것이라 보이지만은 않는다.
두권의 책은 부제 속에 답이 있다. 서울대 국사학과의 첫 여성 교수를 지낸 정옥자 명예교수(74·전 국사편찬위원장)가 쓴 <사임당전>은 일제강점기에 자리잡은 사임당의 ‘현모양처’ 이미지와 박정희 정권의 영웅화 작업을 접어두고 그의 일생과 작품을 집중적으로 살핀다. 반면, 40~50대 역사학자들이 쓴 <신사임당…>은 사후 465년에 걸쳐 사임당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주·확대·재생산 되었는지 정면으로 파헤친다.
<초충도병풍>(지본 채색, 폭 48.6×35.9㎝, 오죽헌시립박물관 소장). 고연희 교수는 오죽헌시립박물관 소장 초충 8폭은 송담서원본의 모사본 중 하나라고 밝혔다. 18세기 초 송담서원에 안치되었던 작품은 불타 사라졌다. 다산기획 제공
신사임당의 첫 기록은 아들 율곡 이이가 16살에 별세한 어머니의 일대기를 적은 <선비행장>이다. 정 교수는 이 행장부터 신씨의 생애, 산수를 매우 사랑하는 습벽(연하고질), 학문과 수양, 결혼생활, 예술혼, 자녀 이야기 등을 다뤘다. 16세기 전반, 성리학적 질서가 조선에 뿌리내리기 전이었기에 사임당은 오랫동안 친정에 머무를 수 있었다. 양가와 남편의 격려 속에 여성임에도 활발한 문예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정 교수는 풀이했다.
사임당의 자수, 바느질 등 예술 생활은 귀족의 호사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을 대신한 생계부양자로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한다. 특히 초서에서 보이는 유려한 붓놀림, 초충도의 뛰어난 사생력을 높이 평가했다. 자수를 놓기 위한 그림을 그릴 때도 탁월한 미감이 필요했거니와, 자수의 정교한 제작 과정은 구도 과정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이에 정 교수는 사임당을 “조선 시대 여성 선비의 전범” “여중군자” “결혼 생활의 성공과 자아실현을 이룬 여성”이라고 높인다. 사임당이 현모양처인가 훌륭한 예술가인가 하는 이분법적 질문은 모성과 여성 주체성을 상호 갈등적 측면으로 보는 판에 박힌 시선이라는 얘기다.
반면 <신사임당, 그녀를 위한 변명>의 지은이들은 16~21세기까지 시대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신사임당 이미지 변천사를 겨냥한다. 이경구 한림대 한림과학원 인문한국(HK) 교수는 사임당을 활용한 ‘조선 유교 프로젝트’를 설명한다. 임진왜란·병자호란으로 나라를 재건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 김장생과 송시열은 율곡 학맥을 서인-노론에 정착시켰고, 이 기획으로 율곡이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사임당의 난초 그림에 대해 송시열은 “손을 놀려 표현된 것이 혼연하여 (…) 사람의 힘으로는 이같을 수 없다 (…) 율곡 선생을 낳으심이 당연하다”며 과장하여 썼다. 율곡을 신화로 만드는 데 어머니 사임당의 재능을 도구로 삼은 증거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8세기 문헌에 나타난 “잉태 담론”이 사임당-율곡을 밀착시키며 신비감을 더했다고 분석했다. 김장생은 율곡의 태몽이 용이라는 담론을 처음 제시했고 이는 그 뒤 ‘흑룡’으로, 송시열에 이르러 ‘신룡’으로 바뀌었다. 송시열은 또한 북송 대학자 정호·정이 형제의 어머니 후부인과 사임당을 연결시켰다.
홍양희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일제강점기에 “현모양처는 민족주의와 식민주의가 여성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여성 모델”이었다고 보았다. 식민지 조선의 여성 동원을 위해 조선총독부는 공연과 연극으로 신사임당을 ‘군국의 어머니’로 추어올렸다. 나혜석, 김원주 등 ‘신여성’들이 현모양처론에 격렬하게 저항한 반면, 춘계 허영숙은 신사임당을 ‘민족의 어머니’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 ‘현모양처론의 정치학’은 ‘나쁜’ 여성들(모던걸, 신여성)과 짝을 이루며 젠더 역할을 강화했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선양 사업을 중심으로 신사임당의 여러 이미지를 살핀 김수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신사임당 이미지와 담론이 “전통과 근대가 접합된 콜라주”라고 분석한다. 사임당 관련 모든 담론의 원자료 구실을 하는 노산 이은상의 <사임당의 생애와 예술>(초판 1962년)은 각종 자료, 박정희 정권의 관련 사업을 추가해 1994년 7판으로 완성되었다. 김 연구관은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가 “사임당의 현대적 현신” “국가의 어머니상”에 비유되었다고 밝힌다. “육영수와 사임당은 ‘한국적 부덕’의 사표로서 상호 공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이제 신사임당은 “우아한 자태의 외관”과 “뛰어난 재능”으로 “여성에게 부여된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근성을 지닌 다중적 페르소나를 구사하는 여성”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의 입맛에 맞게 주조되었지만 다른 한편 현대 여성들의 욕망을 반영한 캐릭터로서 사임당 이미지가 가진 복잡성을 가리킨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8폭’의 <오이>. 자수를 위한 도안의 느낌이 강하다. 다산기획 제공
그러나 이경구 교수의 말대로 ‘신비화된 해석’ ‘역사 왜곡’을 피하면서 ‘진짜 신사임당’을 파악하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예를 들어, <신사임당…>에서 고연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사임당의 것이라고 알려진 작품 상당수(오죽헌시립박물관 소장 초충 8폭, 간송미술관 소장 초충 8폭, 동아대박물관 소장 자수병 8폭)가 18세기 모사본이라고 추정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8폭’의 경우, <사임당전>에서 정옥자 교수가 이 작품이 국회의원 정해영에게 넘어간 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고 밝힌 반면 고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소장했다가 기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러 화훼·초충도들도 작품의 진위 여부나 예술성에 대한 두 학자의 견해가 다르다.
사임당에 대한 과장된 칭송이나 천차만별의 해석이 긴 세월 쌓였기 때문에 이런 후대의 혼돈은 필연적이다. 수백년 뒤 육영수로 연결되며 강화된 현모양처론, 구국의 어머니라는 이미지가 지금 박 대통령의 올림머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은 신사임당에 대한 또 다른 진지한 생각거리를 남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