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인 한승헌(82) 전 감사원장이 시집 <하얀 목소리>(서정시학)를 펴냈다. 1961년과 67년에 <인간귀향>과 <노숙>이란 이름의 시집을 냈으니 생애 세번째이자 49년만의 새 시집인 셈이다.
첫 시집은 경남 통영에서 초년 검사 생활을 할 때 나왔다. “검사 초임지가 문인을 많이 배출한 경남 통영이었어요. 주변의 권유로 대학 시절부터 써온 시로 시화전도 열고 첫 시집을 냈죠.” 두번째 시집은 변호사 시절에 냈다. “정식 등단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어요. 전북대 학보사 기자 시절에 시를 쓰기 시작했죠. 지면이 비면 제 시로 메꾸기도 했어요. 당시 지방지에 실린 제 시를 보고 고 신석정 시인이 좋게 평해주시기도 했죠.”
이번 시집은 두 시집에 실린 시들과 그 뒤 쓴 시들 가운데 추려 묶었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흔적이 없어질 것 같아 모았지요.”
가장 최근 시는 80년대말에 쓴 ‘하얀 목소리’다. 매혈을 하던 젊은이가 혈액원 앞에서 쓰러졌다는 라디오 뉴스를 듣고 썼다. “- 또 오셨군요/ - 할 수 없지요.(…)그것은/ 우리 시대의 만가였다.//(…)// 슬픈 산하에 잠기는 하얀 목소리/ 오늘 나는 부끄러운 조객인 것을…”(하얀 목소리 중)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시집 해설 글(젊은 변호사의 정신적 노숙시대)에서 이 시를 두고 육신과 영혼을 팔아가면서 죄인처럼 묵묵히 굴종하는 시대를 고발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또 “한승헌의 시는 역사와 민중으로 다가서기 위한 정서적인 자기 내성이자 다짐이며 투지의 단련과정이었다”고도 했다. 한 변호사가 70년대 이후 펼쳐 온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원동력이 젊은 시절 그의 시편에서 확인된다는 것이다. 이런 시구가 한 예일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 나래를 펼 때/ 이 가난한 역사 안의 노숙이/ 생명의 참 뜻이기를 비옵는/ 저는 한 마리 어린 사슴이옵니다.”(염원 중)
한 변호사는 18일 통화에서 “시는 음지로 밀려난 ‘비주류'들의 정서와 바른 세상을 향한 열망을 담아내야 한다”며 “‘하얀 목소리'로 상징되는 소외된 약자들의 염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또 50년전 자신의 시에 대해 지금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말도 했다. “한 시대의 아쉬움을 극복하고 싶었던 염원”을 발견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고 신동엽 시인이 제 시를 두고 구도의 시라고 했어요. 먹물 든 사람으로서 한 시대에 대한 걱정이 많이 들어가 있죠.”
80년대 이후엔 운문 대신 시사적인 글에 집중했다. 유머 산문집을 펴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임 평론가는 그에게 ‘장기를 살려’ 풍자시를 써볼 것을 권했다. “풍자시가 시로서 완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한번 써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영향을 끼친 시인을 묻자 고 신석정 신동엽 김남주 시인과, 김남조 시인을 들었다.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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