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밥 딜런 지음, 서대경·황유원 옮김/문학동네·4만8000원
타란툴라
밥 딜런 지음, 공진호 옮김/문학동네·1만3800원
밥 딜런의 ‘깜짝’ 노벨문학상 수상은 숱한 논쟁을 낳았다. 찬성과 반대에서부터 문학과 노래의 관계, 밥 딜런 노랫말의 문학적 가치 여부까지 논쟁은 여러 갈래로 퍼져나갔지만, 한국의 평범한 독자가 그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딜런이 유명한 가수라고는 해도 그의 노래 가운데 누구나 아는 곡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데뷔 앨범 <밥 딜런>(1962)에서부터 2012년 앨범 <폭풍우>까지 31개 정규 앨범에 실린 그의 노랫말 전부와 정규 앨범에 실리지 않은 노랫말 99개를 포함해 그의 노래 가사 387개를 모두 담은 책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이 해가 가기 전에 번역돼 나온 것은 그런 점에서 반갑다. 이와 함께 딜런의 유일한 소설 <타란툴라> 역시 번역 출간됨으로써 이제 한국 독자들도 ‘밥 딜런 문학’의 전모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오, 무얼 보았니, 내 푸른 눈의 아들아?/ 오, 무얼 보았니, 내 사랑하는 어린것아?/ 저는 사방이 온통 야생 늑대들인 가운데 태어난 아기를 봤어요/ 다이아몬드로 된 텅 빈 고속도로를 봤죠/ 피가 계속 뚝뚝 떨어지는 검은 나뭇가지를 봤어요/ 피 흘러내리는 망치를 든 남자들로 가득한 방을 봤죠/ 온통 물로 뒤덮인 흰 사다리를 봤어요/ 어린아이들 손에 들린 총과 날카로운 칼을 봤답니다/ 그리고 세찬 비, 그리고 세찬 비가, 세차고 세찬 비가/ 그리고 세찬 비가 쏟아질 거예요”(‘세찬 비가 쏟아질 거예요’ 중에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의 노래 가사집과 소설 <타란툴라>가 나란히 번역 출간되었다. 사진은 2012년 5월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을 받는 밥 딜런. AP 연합뉴스
1963년 앨범 <자유분방한 밥 딜런>(The Freewheelin’ Bob Dylan)에 실린 ‘세찬 비가 쏟아질 거예요’(A Hard Rain’s A-Gonna Fall)를 두고 핵전쟁의 공포를 노래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인터뷰에서 딜런은 이것이 “핵전쟁 노래가 아니”고 “그냥 폭우”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노랫말을 쓴 딜런의 뜻을 존중할 필요는 있겠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서 핵전쟁을 떠올리는 것 또한 듣는 이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겠다. 물론 자신을 저항가수라는 고정된 이미지에 가두려는 데 대한,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반발은 또 그것대로 존중해야 마땅하겠지만.
“펜으로 예언을 설하는/ 작가들, 비평가들이여 오라/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있으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리니/ 또한 너무 성급히 말하지 말라/ 바퀴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으며/ 그것에 이름 붙일 자 아직 아무도 없으니/ 지금의 패자는 훗날의 승자가 될 것이며/ 시대가 변하고 있으므로”(‘시대는 변하고 있다’ 중에서)
스티브 잡스가 1984년 매킨토시 컴퓨터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낭독해 유명해진 노래 ‘시대는 변하고 있다’는 예언가적 울림으로 가득하다. 개인사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읊은 노래들도 있지만, 딜런의 노랫말들은 추상적이며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를 담은 것들이 많다. 또한 딜런의 노래들은 대체로 각운을 충실히 지키는 편인데, 이번 한국어판은 영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문을 함께 실음으로써 독자가 그것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게 했다.
추상적이며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라면 노래 가사보다는 소설 쪽이 한수 위다. <타란툴라>는 1971년에 출간되었지만 사실은 딜런이 이십대 중반이던 1964년부터 1966년 사이에 쓴 작품이다. 소설이라고는 해도 이렇다 할 줄거리와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딜런 자신의 개인사와 음악적 고민, 바깥 세계와의 부대낌 등을 실험적 형식에 담았다. 문장 차원에 미달한 파편적 언술이 난무해서 읽기가 녹록하지는 않은데, 이렇게 시작한다.
“어릿사/반짝이는 성가 주크박스와 그의 여왕 & 그는 취한 수혈의 상처 속에 퍼지고 스스로 감미로운 불구의 선율에 열중하고 있다 & 나는 환호로 맞이한다, 오 위대하고 특별한 엘도라도의 황홀과 그대, 인격을 지닌 상처난 신을, 그러나 그녀는 그대를 이끌지 못한다(…)”
번역자 공진호는 “<타란툴라>는 베트남전쟁과 인권운동, 창조적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환상을 보여주는 초현실주의적 서사시의 콜라주(…)가사를 쓰기 위한 연습장,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그대로 여과 없이 토해 놓은 상상의 보고, 의식의 흐름, 수많은 페르소나의 각축장”이라고 설명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