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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동북 수렵 민족의 ‘살아있는 화석’, 어룬춘족

등록 2016-12-29 19:53수정 2016-12-29 22:05

한국과 중국 학자들 공동연구
곰 숭배와 샤머니즘 서로 닮아
한국 고대문화 이해의 ‘길잡이’
어룬춘족 여성의 모습. 청아출판사 제공
어룬춘족 여성의 모습. 청아출판사 제공
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 1
김인희 외 지음/청아출판사·1만8000원

지도를 보면, 몽골고원과 중국 동북지역 사이에, 또 중국 동북지역과 러시아 사이에 ‘싱안링’이라는 굵직한 산맥이 흐른다. 대·소 싱안링 산맥은 오랫동안 동북아시아 지역 유목민족들의 삶터였다. 이곳에서 살아온 유목민족들은 거란, 선비, 실위, 숙신, 말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역사에 등장했으나, 각 민족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동북지역에는 어룬춘족, 만족, 몽골족, 다워얼족, 어원커족, 허저족 등의 극소수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데, 이들의 전통문화는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어룬춘족 남성의 모습. 청아출판사 제공
어룬춘족 남성의 모습. 청아출판사 제공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시작한 ‘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는 이 유목민족 연구를 통해 동북아시아 고대 문화를 이해하려는 프로젝트다. 첫번째 결과물로, 중국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수렵 중심 생활을 유지해온 민족인 어룬춘족에 대한 연구서가 최근 나왔다. 물질문화와 관련된 영역은 한국 학자 4명이, 정신문화와 관련된 영역은 어룬춘족인 중국 학자 3명이 주로 맡아서 공동연구를 펼쳤다. 다워얼족, 허저족, 어원커족 등에 대한 연구 결과도 총서로 계속 발간할 예정이라 한다.

무용총 벽화의 여자 춤꾼이 신은 가죽 장화
무용총 벽화의 여자 춤꾼이 신은 가죽 장화
어룬춘은 ‘산꼭대기에 사는 사람’ 또는 ‘순록을 사용하는 사람’을 뜻한다. 싱안링에 동물만 많고 사람이 없었는데, 천신인 ‘언두리’가 짐승의 뼈와 살, 가죽과 털에 진흙을 더하여 사람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전해진다. 어룬춘족과 어원커족, 허저족은 본래 하나의 민족으로, 바이칼호 일대에 살다가 헤이룽강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민족 분화가 이뤄졌다는 설도 있다. 어룬춘족에게는 퉁구스어족에 속하는 어룬춘어가 있으나 문자는 없어, 민족 기원에 대한 통일된 학설은 아직 없다. 다만 생활 습성이나 언어 계통을 볼 때 숙신-말갈-여진 또는 선비-실위가 기원일 것이라는 학설이 힘을 얻고 있다. 대대로 수렵생활을 해오던 어룬춘족은 1950년대 중국 정부에서 정착화를 시도한 뒤로 현재는 정착촌에 거주하며 농경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다. 2010년 현재 남은 어룬춘족은 8659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1950년대 어룬춘족 여성들의 모습. 청아출판사 제공
1950년대 어룬춘족 여성들의 모습. 청아출판사 제공
학자들이 연구해 드러낸 어룬춘족의 전통 생활문화를 통해 고대 동북지역 유목민들의 삶이 어땠는지 엿볼 수 있다. 어룬춘인은 춥고 한랭한 산림 지역에서 수렵과 어렵을 통해 삶을 꾸렸고, 육류 중심의 음식문화, 사냥에서 얻은 털과 가죽으로 만든 복식문화 등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들은 ‘무쿤’이라 불리는 혈연·씨족 공동체를 사회조직의 큰 뼈대로 삼았는데, 무쿤은 3~4대가 함께 사는 ‘우리린’이라는 여러개의 가족공동체로 이뤄졌다. 우리린의 하부 단위는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가정으로, 이들은 나무기둥을 세워 원뿔형으로 만든 ‘셰런’이란 가옥에 살았다. 일부일처제가 원칙이었고 남성 지배가 두드러졌다. 아들이 분가하면 부모는 자신의 불더미에서 장작불을 하나 꺼내어 아들과 며느리가 새로 만든 셰런에 불을 붙였다. 사람이 죽으면 주로 시신을 방치하여 저절로 썩게 하는 수장(樹葬)을 치렀는데, 이는 퉁구스 민족에게서 광범위하게 찾아볼 수 있는 관습이라 한다.

어룬춘족 피혜 부츠. 어룬춘문화공예관 소장. 청아출판사 제공
어룬춘족 피혜 부츠. 어룬춘문화공예관 소장. 청아출판사 제공
‘북방 수렵 민족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리는 어룬춘족에게서 한국인과 친숙한 모습들도 제법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연신 위주의 민간신앙, 그 중에서도 곰과 관련한 신화다. 곰을 ‘할아버지’, ‘영감’ 등으로 부르며 인간과 같은 뿌리를 지닌 존재로 외경하면서도 살기 위해 그를 죽여야 하는 환경 속에서, 어룬춘족은 곰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졌다. 곰을 잡을 때에는 꼭 곰의 머리를 먹지 않고 걸어두는 등 다양한 금기도 있었다. 곰이 인간의 조상이 되었다는 한국의 단군신화와의 공통점을 집어낼 수 있다. 지은이는 “이런 공통점은 수렵문화를 비롯한 한국의 고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를 준다”고 지적한다. 어룬춘족의 전통 복식과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복식이 유사하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어룬춘족은 점 문양이 담긴 사슴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고구려 고대 복식에서도 비슷한 점 문양이 나타난다. 부츠 형태의 가죽 장화도 닮았다. 책은 “어룬춘족의 피혁제 복식은 고조선의 복식 구조와 형태, 소재, 문양 등을 재현하는 데 근접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어룬춘족 점 문양의 피포의. 어룬춘문화공예관 소장. 청아출판사 제공
어룬춘족 점 문양의 피포의. 어룬춘문화공예관 소장. 청아출판사 제공
원시신앙을 가리키는 말로 보편화한 ‘샤먼’이 원래 퉁구스에서 왔으며, 어룬춘족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이 아직도 이 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샤먼은 퉁구스어로 “알다”, “철저히 알다” 등의 뜻이다. 북아시아와 북유럽, 북미 등 넓은 지역에 사는 유목민족들은 ‘만물유령’(모든 것에 신이 있다) 신앙을 기초로 삼아 세상을 상·중·하로 구분하는 세계관을 지녔는데, 특히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샤먼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구했다고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어룬춘족 남자의 복식. 어룬춘 박물관 소장. 청아출판사 제공
어룬춘족 남자의 복식. 어룬춘 박물관 소장. 청아출판사 제공

고구려 무용총 고분벽화에 나오는 점 문양의 복식.
고구려 무용총 고분벽화에 나오는 점 문양의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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