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한창훈 지음/한겨레출판·1만3000원
2015년 5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했던 에세이 ‘한창훈의 산다이’가 책으로 나왔다. 전라도 섬 지방에서 쓰이는 말 ‘산다이’는 “또래들끼리 어울려 한바탕 신나게 논다”는 뜻이라고. 그렇지만 그보다는 말끝에 습관적으로 ‘~이’를 붙이는 전라도 말투로 이해해, “(특별한 일은 없어도 나름 재미있게)살고 있다”는 뜻으로 새기고 싶다. 삶 자체가 축제 아니겠는가. 책은 작가 한창훈(사진)의 고향이자 그가 지금도 살고 있는 섬 거문도를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과 추억, 사유를 풀어 놓는다.
물론 그야말로 축제에 해당하는 일들도 없지 않다. 양식장 그물이 찢어지면서 다 자란 참돔 몇천마리가 탈출하는 바람에 가두리 주변에서 사흘에 걸쳐 300마리를 낚시로 잡은 “찝찝한 만선”, 소아마비에 걸린 여자친구를 초·중학교 9년 동안 업어서 등하교시켰던 친구들이 그 친구의 이른 죽음 뒤 평소 친구가 좋아하던 팝송을 상엿소리 삼아 장례를 치렀던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산다이”, 바닷가에 홀로 앉아 남풍에 지워지는 섬들을 바라보며 세월과 더불어 지나가 버린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비 오는 호젓한 저녁 작가의 지정석 같은 슈퍼 앞 평상에 앉아 음악을 틀어 놓고 소주를 마시는 자리(“사람의 휴식이자 길의 휴식이며 풍경의 휴식”) 등이 두루 축제로서 산다이에 해당하겠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살며 글을 쓰는 작가의 바다에 대한 사랑은 호가 나 있다. 그런 그가 평생 자신을 위해 가장 큰 돈을 쓴 것이 지인과 공동 명의로 소형 중고 선외기정(엔진이 선체 밖으로 나와 있는 작은 보트)을 산 일이다. 그가 보기에 한 사람이 바다와 맨몸으로 만나는 가장 근사한 방식은 “홀로 내 배를 몰고 푸른 바다로 멀리 나가는 것”이다. “속도를 죽이고 파도 소리 따라 자연스럽게 떠밀리는 그 순간에 바다와 내가 정면으로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보름달 뜬 밤바다는 더욱 그렇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추억, 바닷가 우체국에 대한 로망, 거문도등대 가는 길 고갯마루에 놓인 벤치에서 만나는 풍경 등 촉촉한 감성을 건드리는 글들도 있지만, 작가 특유의 능청과 해학을 만나는 재미도 쑬쑬하다. 이런 식이다.
“다시 한번 낚시 좋아하는 분들, 구미가 사정없이 당기실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렇게 낚았다는 거지? 이 이야기는 조금 뒤에 이어진다(하, 독자의 눈을 계속 붙들어놓기 위한 이 뻔한꼼수!).”
최재봉 기자, 사진 김무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