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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혼한 엄마와 13살 아들 그리고 탈옥한 살인범

등록 2017-01-12 19:22수정 2017-01-12 20:35

샐린저 연인의 소설 ‘레이버 데이’
노동절 연휴 엿새 동안의 드라마
청소년기의 혼란과 불안, 회한도
레이버 데이
조이스 메이너드 지음, 송은주 옮김/문학동네·1만3800원

<레이버 데이>의 지은이 조이스 메이너드(1953~)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1919~2010)와 관계로 먼저 유명세를 탔다. 예일대 2학년이던 1972년 <뉴욕 타임스>에 실린 메이너드의 에세이를 본 샐린저가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둘은 30년 넘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연인 관계로 발전해 10개월간 동거한다. 메이너드가 샐린저와 이야기를 담아 1998년에 낸 회고록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나며>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메이너드의 2009년작 <레이버 데이>는 이혼녀 아델과 열세살짜리 아들 헨리 그리고 탈옥범 프랭크 세사람이 노동절 연휴 엿새 동안 동거를 하면서 벌어지는 사건과 감정의 파장을 다룬 소설이다. 18년간 옥살이를 하던 중 맹장수술을 마친 직후 병실 창을 깨고 도망친 프랭크는 마트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델 모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모자는 별다른 의심이나 불안감 없이 그를 받아들여 집에 숨겨 준다. 살인 혐의로, 가석방까지 최고 2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던 프랭크의 출현은 저수지의 고인 물처럼 가라앉아 부식해 가던 모자의 삶에 낯선 활기를 선사한다. “모험을 위해 어딘가 갈 필요가 없었다. 모험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케이트 윈슬릿과 조슈 브롤린이 주연한 영화 <레이버 데이>의 스틸 컷. “불과 엿새의 시간 동안 그들은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매달렸다.” <한겨레> 자료사진
케이트 윈슬릿과 조슈 브롤린이 주연한 영화 <레이버 데이>의 스틸 컷. “불과 엿새의 시간 동안 그들은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매달렸다.” <한겨레> 자료사진
열세살 소년 헨리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소설은 청소년기의 혼란과 불안, 의도하지 않은 작죄(作罪)와 회한, 그리고 그를 통한 성장을 다룬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자의 이유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고립무원의 성인 남녀가, 처지가 같은 상대에게서 치유와 구원의 빛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 성인 로맨스 소설로 볼 수도 있다.

“우리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 엄마가 행복해지는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우리가 서로를 찾아낸 것-그가 엄마를 찾아낸 것뿐 아니라 우리 셋 모두가 서로를 찾아낸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삶에 찾아온 첫 번째 진짜 행운이라 할 만했다.”

이혼 뒤 오랫동안 제 안에 틀어박혔던 아델에게 듬직하고 낭만적인 남자 프랭크는 잃어버렸던 사랑의 감각을 되찾게 해 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로 이루어진 ‘완전한 가족’을 부러워하던 헨리에게는 야구와 요리를 가르쳐 주는 프랭크가 아버지 대신으로 손색이 없었다. 아내에게 배신 당하고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쓴 프랭크에게 미모의 이혼녀 아델은 새로운 사랑과 삶을 꿈꾸게 하는 동력이었다. 18년간 모범수로 복역해서 형기가 ‘불과’ 2년밖에 남지 않은 프랭크가 탈옥을 감행한 일을 두고 소설 화자 헨리가 “엄마를 구하기 위해”라는 낭만적인 설명을 붙인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사실 <레이버 데이>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낭만적인 설정을 지녔다. 헨리와 아델 모자가 탈옥수를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인 일부터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을 떠나 캐나다 오지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던 세사람의 계획이 마지막 순간에 틀어지고, 프랭크는 다시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게 된다. 프랭크가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헨리가, 적극적이고 의식적이지는 않더라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20년 가까운 옥살이를 다시 하면서도 프랭크는 헨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들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난파된, 서로의 피부, 서로의 몸 말고는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두 사람 같았”던 아델과 프랭크의 삶과 꿈을 미성숙한 질투와 의심으로 망가뜨렸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이언 매큐언의 <속죄>에 견주는 견해는 타당하다. 길고 고통스러운 기다림 끝의 해피엔딩이 <속죄>에서는 허구적 반전으로 처리되었다면, 여기에서는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 된다. 마음 졸이며 소설을 읽던 독자는 뒤늦은 해피엔딩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델과 프랭크의, 그리고 헨리의 남은 삶을 축복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해피엔딩은 작품의 처지에서 보아도 행복한 결말이라 할 수 있을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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