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피노키오의 모험> 초판 표지. 위키피디아
② <피노키오의 모험>
때는 1880년대 초.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 통일·부흥운동)의 목표를 최종적으로 이룬 지 어느덧 10년 남짓 지났다. 주변 열강의 위세에 눌려 있던 이탈리아 사회는 통일국가의 깃발 아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성장과 팽창, 희망과 열정의 에너지가 솟구쳤다. 무엇보다 자유의 기운이 도처에 넘쳐났다. 물론 갈 길은 멀었다. 여러 개의 언어가 반도 전역에 혼재했고, 문맹률은 여전히 두자릿수를 훌쩍 넘었다. 전국 단위의 변변한 신문도, 교육제도도 미처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사회는 충분히 역동적이었다.
이 무렵, 한 어린이 잡지에 정기적으로 실리는 동화 연재물이 큰 인기를 끌었다. 연재물은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널리 퍼져 나갔다. 줄거리는 대략 이랬다.
옛날 옛날에 제페토란 이름의 할아버지가 살았다. 우연히 이웃한테서 나무토막 하나를 얻은 할아버지는 열심히 나무토막을 깎아 인형을 만들었다. 코가 긴, 우스꽝스럽게 생긴 인형이 할아버지의 빼어난 솜씨로 탄생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무인형이 말을 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인형에 피노키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낡은 벨벳 외투를 팔아 피노키오에게 글공부 책을 사주었다. 하지만 피노키오는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말썽꾸러기였다. 언제나 낯선 곳을 구경하거나 놀러 갈 궁리만 했다.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빼먹고 몰래 인형극을 보러 간 피노키오는 여우와 고양이를 만나는데, 여우와 고양이는 저 멀리 ‘기적의 땅’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며 그곳에 금화 다섯 닢을 묻으면 다음날 금화 싹이 나고 꽃을 피워 금화가 가득 매달린 나무가 자랄 것이라고 피노키오를 꾀었다. 기적의 땅이라던 곳에 도착하자마자 어느새 강도로 변한 여우와 고양이는 올가미를 만들어 피노키오의 목에 건 다음 떡갈나무에 대롱대롱 매달았다. 피노키오는 그제야 잘못을 깨달았으나 점점 숨이 막히고 의식이 흐릿해져갔다.
어머니 고향 이름 ‘콜로디’를 필명으로
1881년 몇 달 동안 ‘모험 이야기’란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이 연재물은 모두 15장으로 구성됐다. 맨 마지막 장(제15장)은 강도에게 붙잡혀 돈을 빼앗기고 떡갈나무에 매달린 피노키오가 두 다리를 쭉 뻗고 얼음처럼 굳어져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피노키오가 숨을 거두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연재가 끝난 뒤 잡지사에는 연재를 계속해달라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결국 이듬해인 1882년 제2편(속편) 연재가 시작돼 이듬해 2월까지 진행됐다. 전편에 이어 16장부터 36장까지로 짜인 속편엔 ‘피노키오의 모험’이란 새 제목이 붙었다. 1883년 여름엔 전편과 속편을 하나로 묶은 36장 구성의 단행본 <피노키오의 모험>이 정식으로 출간됐다.
1880년대 초 어린이 잡지에 연재
통일 뒤 자유주의 시대 상황 반영
과도한 교훈·교육 강조하기보다
삶의 다양성 드러내는 데 방점
산업사회에서 나타난 부패·빈곤
‘비판’ 넘어 파시즘 입맛 맞게 윤색
게으름과 배고픔 맞세우는 노동규범
가족애 등 중산층 윤리 강조하기도 애초 계획에 없던 속편 연재까지 이어가다 보니 <피노키오의 모험>의 몸집은 꽤나 커지고 줄거리는 한층 풍부해졌다. 전편의 끝 대목에서 숨을 거둔 피노키오는 속편의 들머리(제16장)에서 숲속에 천년 이상 살고 있는 파란 머리의 요정(메리)이 나타나 손뼉을 세 번 치고 발을 세 번 굴러 매 한마리를 부른 뒤 매가 부리로 올가미를 끊고 바닥에 옮겨 눕히자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사의 마음도 잠시뿐. 피노키오는 요정에게 금화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원래 긴 피노키오의 코가 두 손가락만큼이나 더 길어진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도 ‘모험’이란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친구의 꾐에 빠져 당나귀 열두 쌍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장난감마을로 갔다가 자고 일어났더니 귀가 하염없이 길어지고 당나귀로 변해버린 이야기, 자신을 찾으러 나섰다가 큰 상어에게 잡아먹힌 제페토를 상어 뱃속에서 만나 함께 극적으로 탈출한 이야기 등등. 모든 모험과 역경을 거쳐 피노키오는 마침내 ‘진짜 소년’이 되는데….
이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지어낸 주인공은 카를로 로렌치니란 인물이다. 중부 토스카나 지역의 피렌체에서 태어난 로렌치니는 인근에 위치한 어머니의 고향 콜로디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런 인연으로 ‘콜로디’란 필명을 사용한 터라, <피노키오의 모험> 지은이의 이름은 후대에 카를로 콜로디로 알려져 있다. 한때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직접 가담했고 통일운동을 지지하는 정치신문을 펴낸 적도 있는 로렌치니(콜로디)였지만, 그의 핏속엔 무엇보다 토스카나 지역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모험정신이 흐르고 있었다.(※일부 평론가들은 그가 실제로는 ‘바람둥이’였고 어린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뿐더러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았다면서, 이런 인물이 역사에 길이 남을 동화를 쓴 건 난센스라 비꼬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탈리아 반도 전역을 통일한 뒤였고 자유로운 토스카나 지역 전통을 자양분 삼다 보니, <피노키오의 모험> 줄거리를 이끌고 가는 주된 동력은 새로움 혹은 미지의 세상에 대한 원초적 호기심과 강렬한 자유의지였다. 막 형성되기 시작한 신흥 시민계층의 이상과도 궁합이 잘 맞았다. 그래서였을까. 재미와 환상, 모험이라는 여러 흥행요소가 황금비율로 배합된 <피노키오의 모험> 곳곳에선 ‘못된 사람’이 감초처럼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지독한 ‘악인’의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먼 편이다. 특히 전편이 그렇다. 거짓말 역시 엄중하게 단죄받아야 할 ‘죄악’이라기보다는, 호기심 가득한 말썽꾸러기들이 어울리는 세상의 자연스런 일상에 가깝게 묘사됐다. 이뿐 아니다. 후대의 해석과 윤색에 익숙한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인간이 되고픈 나무인형의 ‘꿈’ 역시 원작에선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피노키오는 내내 인형의 삶에 만족했다.) 모험심과 호기심 가득한 어린 주인공이 소소한 일탈행위를 일삼는 이른바 ‘모험소설’ ‘건달소설’ 범주로 묶을 수 있는 <피노키오의 모험>이 일차적으로 그리려 했던 건 삶의 다양한 경험, 일상의 다층구조에 가깝다고 보는 게 무난하다. 당대 이탈리아 사회를 하나의 색깔로만 재단하기 힘들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사람들에겐 확장의 시대, 팽창의 시대, 진보하는 시대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무솔리니 정권 4차례 아류작 출간
여러 지표가 말해준다. 남부지역 농업경제의 생산성은 낮았고 구매력도 부족해 제조업 발전에 필수적인 ‘국민시장’의 형성은 더뎠으나, 생산재 부문과 북부의 소수 대기업에 편중된 성장전략은 수치상으로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어림잡아 1880년을 전후한 십여년간 평균 성장률은 7%를 웃돌았다. 경제발전론의 관점에서 이탈리아는 분명 ‘이륙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뒤처진 이탈리아에도 영국·프랑스처럼 ‘아름다운 시절’(벨 에포크)이 찾아오고 있던 셈이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이탈리아라는 역사적 시공간은 분명 용광로였다. 성장의 속도만큼이나, 빛과 그늘의 대비는 확연했다. 성장과 풍요의 열매는 북부 공업지역, 신흥 시민계층, 대기업 조직노동자에 한정됐다. 남부 농촌지역을 포함해 도시 하층계급, 비조직 노동인구의 대부분은 여전히, 아니 외려 더욱 혹독한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이탈리아 디아스포라’라고도 불리는 거대한 이민행렬은 단적인 예다. 통일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시기에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이탈리아를 등진 이민행렬은 무려 900만명에 이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피노키오의 모험>에는 자유와 모험의 코드와는 결이 조금 다른 흔적도 언뜻언뜻 눈에 띈다. 채 완수되지 못한 통일국가의 약속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실망감·배신감도 곁들여졌다고나 할까. 인형극단(조직범죄)이나 여우와 고양이(강도·사기)는 지은이가 당대 사회의 그늘에도 결코 눈감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치로 받아들여진다.
운명은 가혹했다. 20세기 이탈리아의 비극은 ‘사회비판’의 에너지가 파시즘이라는 재앙으로 분출했다는 데 있다. 20세기에 본격 진입하면서 계층간 갈등은 격화됐고, 이탈리아 사회엔 어느덧 ‘혼란의 담론’이 물결쳤다. 덩달아 사랑스런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대하는 시각의 저울추도 자유·삶·모험과 같은 자유주의적 코드에서 불만·혼란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급기야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에 이르러선 아예 파시즘의 색깔이 듬뿍 덧칠된 4개의 아류작이 저마다 ‘피노키오~’란 이름을 달고 연이어 출간됐다. 이들 작품 모두 로렌치니의 원작 주인공을 그대로 옮겨오고 줄거리 뼈대를 온전히 이어받았으나, 원작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세상을 맘껏 둘러보는 나무인형 피노키오와 친구들 무리는 이제 ‘국민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강력한 규율과 훈육에 종속돼야 할 대상으로 박제됐다. 가히 피노키오의 파시즘적 재해석이다. 나무인형에서 ‘진짜 소년’으로의 재탄생은, 열살 남짓한 철부지 말썽꾸러기가 파시스트소년단의 당당한 일원으로 거듭나는 제의와도 같았다.(※파시즘적 재해석에서 피노키오의 ‘코’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원작에 비해 유독 강조되는 대목도 흥미롭다. 원작을 통틀어 피노키오의 코가 길어지는 장면은 단 한 차례뿐, 그것도 수치스럽게 묘사된 것과 대비된다. 이를 두고 ‘남성성’의 과잉이라는 파시즘 정권의 마초적 속성을 드러낸 것이란 비판이 있다.)
파시즘과는 다른 방향에서, 원작을 재해석하려는 작업도 이탈리아를 넘어 여러 나라에서 속도를 냈다. 뿌리내리기 시작한 산업사회의 노동 규율은 자연(전통사회)의 생활리듬을 기계의 생활리듬에 맞추도록 강제했다. <피노키오의 모험>의 주된 구성 인자인 학교와 시간은 그 핵심이다. 빈둥대는 어린이가 교육을 통해 소년이 되는 과정은 이리저리 떠도는 부랑아가 노동훈련소를 통해 노동자로 재탄생하는 전형적인 산업화 시대의 비유로 읽히기도 했다. 특히 게으름과 배고픔의 극적 대비는 임노동을 뼈대로 하는 산업사회에서 ‘죄와 벌’의 탄생 과정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영국·프랑스를 비롯한 선진 산업화 국가에서는 20세기 초반 ‘좋은(착한) 노동자’ 담론이 퍼진 바 있다. 위생과 영양상태의 향상, 근로조건의 개선, 노동법규의 정비 등 사회의 전반적 진보를 반영한 것이겠으나, 금주·금연·위생·도덕 등의 가치를 강조하는 노동자 내부의 움직임은 산업사회의 노동윤리 규범이 얼마나 깊숙하게 내면화했는지를 보여준다.
모험은 가고 도덕만 남아
특히 디즈니가 1940년에 내놓은 장편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는 산업사회의 노동윤리 규범을 ‘중산층 신화’로 확대포장했다. 디즈니식 재해석에선 선악의 대립구도가 원작보다 한층 선명해진 게 특징이다. 상어 뱃속에 갇힌 제페토를 구해내려 자기를 희생하는 피노키오의 모습은 가족애와 책임감이라는 중산층 교양과 윤리규범으로 격상됐다.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베풀고 ‘부활’을 도와주는 파란 머리 요정의 이미지는 ‘엄마’와 ‘성모 마리아’로 치환됐다.
로렌치니 원작의 <피노키오의 모험>은 지금까지 200여개 언어로 번역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는 동화의 전범으로 꼽힌다. 월트 디즈니가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한 작품”이라 평한 애니메이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 자유주의 시대의 끝자락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20세기 파시즘과 산업사회를 거쳐 이제 21세기에도 여전히 굳건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이 과정에서 토스카나 지역 농민층 자녀의 자유분방한 모험담은 도시 중산층 가정의 어린이가 마땅히 깨쳐야할 교훈으로 승격됐다. 자유분방한 독립된 단계로서의 유년기가 성숙하지 못한 ‘과도기’로 격하되는 대가를 치른 건 물론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인공지능(AI) 이야기가 넘쳐나는 21세기 세상에서 <피노키오의 모험>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불에 탄 피노키오의 다리를 제페토가 다시 만들어주는 장면은 인간의 육체가 교환 가능한 부품으로 전락한 포스트휴먼 시대의 알레고리일 수도 있다. 인간이 만들었으나 인간이 되어버리는 나무인형 피노키오. 알파고에 맞서는 인류의 도전을 지켜보는 시대, 이제 새로운 ‘피노키오 읽기’에 나서야 할까.
통일 뒤 자유주의 시대 상황 반영
과도한 교훈·교육 강조하기보다
삶의 다양성 드러내는 데 방점
산업사회에서 나타난 부패·빈곤
‘비판’ 넘어 파시즘 입맛 맞게 윤색
게으름과 배고픔 맞세우는 노동규범
가족애 등 중산층 윤리 강조하기도 애초 계획에 없던 속편 연재까지 이어가다 보니 <피노키오의 모험>의 몸집은 꽤나 커지고 줄거리는 한층 풍부해졌다. 전편의 끝 대목에서 숨을 거둔 피노키오는 속편의 들머리(제16장)에서 숲속에 천년 이상 살고 있는 파란 머리의 요정(메리)이 나타나 손뼉을 세 번 치고 발을 세 번 굴러 매 한마리를 부른 뒤 매가 부리로 올가미를 끊고 바닥에 옮겨 눕히자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사의 마음도 잠시뿐. 피노키오는 요정에게 금화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원래 긴 피노키오의 코가 두 손가락만큼이나 더 길어진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도 ‘모험’이란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친구의 꾐에 빠져 당나귀 열두 쌍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장난감마을로 갔다가 자고 일어났더니 귀가 하염없이 길어지고 당나귀로 변해버린 이야기, 자신을 찾으러 나섰다가 큰 상어에게 잡아먹힌 제페토를 상어 뱃속에서 만나 함께 극적으로 탈출한 이야기 등등. 모든 모험과 역경을 거쳐 피노키오는 마침내 ‘진짜 소년’이 되는데….
피노키오의 원작자 카를로 로렌치니. 어머니의 고향 마을 이름을 딴 ‘콜로디’란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위키피디아
1940년판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의 포스터. 위키피디아
월트 디즈니가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한 작품”이라 부른 1940년 작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는 중산층의 가치를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플리커
무솔리니 정권은 열살 안팎의 어린이로 구성된 파시스트소년단에 피노키오의 이미지를 적극 차용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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