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 크로닌 지음, 홍승효 옮김/사이언스북스·3만5000원 ‘자연선택론’으로 대표되는 다윈주의는 두 가지 난제와 싸우고 있었다. 개미와 공작이 각각 대표하는 ‘이타주의’와 ‘성 선택’의 문제다. 생존에 유리한 개체(유전자)가 살아남는 게 자연선택이자 진화의 법칙이다. 그런데 왜 개미는 자신을 희생하고 집단을 위해 일하는가? 화려하고 장식적인 공작의 꼬리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자연선택의 입장에서 보면, 공작과 개미는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해선 안 됐다. 영국 런던정경대의 과학철학자인 헬레나 크로닌은 공작과 개미를 차례로 다루면서 이 물음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논쟁을 과학사적으로 풀어냈다. 공작의 꼬리는 수컷만 가졌다. 화려한 꼬리는 매혹적이지만, 포식자 눈에 잘 띄어 생존을 방해한다. 이런 모순을 풀기 위해,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1871)을 썼고, ‘성 선택’ 이론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성에게 접근하기 위해 같은 성의 개체들끼리 경쟁한다(성내 선택). 한 성의 개체가 다른 성의 개체를 고른다(성간 선택). 공작 수컷들은 꼬리를 펼치며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암컷은 가장 아름다운 수컷을 선택한다. 아름다운 꼬리를 가진 형질이 선택받고 진화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성 선택론을 주류 진화론자들이 두 손을 들고 환영한 건 아니었다. 진화론의 공동 창시자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부터 20세기 중반의 과학자들까지 거의 100년 동안 “성 선택을 완전히 없애려는” “해체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성 선택 이론을 회피하기 위해 학자들은 공작의 꼬리가 ‘보호색’이라든가 타 개체로부터 쉽게 ‘인식’받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컷의 장식이 다른 개체를 위협하는 관습적인 신호라는 주장도 있었다. 성 선택에 대한 또 다른 반격은 ‘동물에게 과연 미적 감각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미적 감각은 인간만이 가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윈은 이렇게 답했다. “한 소녀가 잘생긴 남자를 봅니다. 그의 코나 수염이 다른 남성들보다 0.1인치 더 긴가 짧은가를 관찰하지 않고도 그녀는 그의 외양을 칭찬하고 그와 결혼할 것이라 말합니다. 나는 공작 암컷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수컷이 암컷에 선택 당한다는 사실이 불쾌해서였을까? 동물을 인간과 같은 반열에 두는 게 불편해서였을까?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살던 시대의 한계를 기억해야 한다. 현대 동물행동학 교과서는 대부분 종에서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고 가르친다. 동물의 이타주의도 많이 연구되어, 집단 내 혈연관계나 ‘기브 앤 테이크’의 호혜성 등이 이타적 행동을 진화시켰다고 설명한다. 인간만이 이타적인 게 아니다. 이 책을 ‘여성혐오’나 ‘종차별주의’와 싸운 다윈주의 논쟁을 발굴한 저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저히 내재주의적 접근을 따랐기 때문에 저자는 그런 식의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과학사에는 내재주의적 접근과 외재주의적 접근이 있는데, 내재주의가 과학을 문화로부터 독립한 진리 탐구 활동으로 보는 시각인 데 반해 외재주의는 과학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데 무게를 둔다. 이를테면 외재주의 방법론에 선 에코페미니스트 도나 해러웨이는 집단 내의 지배관계가 수컷의 성 활동과 관계된다는 ‘성적 환원주의’에 영장류 연구가 빠져있다고 비판한다.(<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1991년 박사 논문으로 이 책을 내놓은 헬레나 크로닌은 공작처럼 화려하게 등장해 지금도 손꼽히는 다윈주의 철학자로 개미처럼 활동하고 있다. 학술서인 만큼 쉽지 않지만, 라마르크의 용불용설과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어떻게 다른지 교과서가 기억 나는 사람이라면 옷깃을 여미고 도전해 볼 만하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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