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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무소불위의 표적살인…미국의 새로운 전쟁

등록 2017-01-19 19:30수정 2017-01-19 19:49

‘뉴욕 타임스’ 기자가 파고든 CIA의 실체
9·11 이후 정보기관 아닌 군사조직으로 변모
전세계 무대로 드론 폭격 등으로 ‘표적살인’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새 책에서도 지적

CIA의 비밀전쟁
마크 마제티 지음, 이승환 옮김/삼인·1만7000원

진실을 감추고 현실을 왜곡해 우리를 속이는 위험한 프레임
정문태 지음/푸른숲·1만7000원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
정문태 지음/푸른숲·2만5000원

2002년 11월, 카에드 살림 시난 알하레시는 트럭을 타고 예멘의 마리브 지역 사막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2000년 미군 구축함에 폭탄을 터뜨려 17명의 군인을 살해한 사건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알하레시는 휴대전화 통화로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이하 시아이에이)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곧 지부티의 기지에서 무장 드론 ‘프레더터’가 출격했고, 프레더터가 발사한 미사일은 알하레시를 비롯해 차량에 있던 모든 사람을 죽였다. 예멘 정부는 가스통 폭발로 인한 사고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그것은 9·11 테러 이래 시아이에이가 전쟁지역으로 선포된 곳 바깥에서 처음으로 ‘표적살인’을 수행한 사례”였다.

<뉴욕 타임스>의 국가안보 전문기자 마크 마제티가 쓴 은 9·11 테러 이후 전 세계를 무대로 미국이 수행해온 ‘비밀전쟁’의 실체를 까발리는 책이다. 드론 공격에서 볼 수 있듯 이제 미국은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하는 재래식 전쟁이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적이라 추정되는 인사들을 도려내듯 제거하는 ‘외과수술적’ 전쟁(책의 원제가 ‘칼의 전쟁’이다)을 벌이고 있다. 지은이는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국가안보’를 맡고 있는 조직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드러낸다.

시아이에이는 1947년 미국에 닥치는 다양한 위협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는 목적으로 창설됐다. 군사조직으로서 첩보 임무를 수행했던 ‘전략사무국’(OSS)이 전신이었기에, 시아이에이는 오랫동안 국외 정보 수집이라는 본연의 구실과 파괴·암살·선전 등의 준군사적 구실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해왔다. “시아이에이의 공격적인 제안에 대한 대통령의 승인, 그 실체가 드러났을 때 의회의 너저분한 조사, 시아이에이의 반성, 시아이에이가 너무 몸을 사린다는 비판, 그리고 또 다른 비밀작전의 추진”은 하나의 순환 고리를 이뤄 되풀이됐다.

미국 제너럴 어토믹스에서 만든 무인기(드론) ‘프레더터’(MQ-1)의 비행 모습.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해 공격용 무기로도 쓰인다. 위키피디아 갈무리
미국 제너럴 어토믹스에서 만든 무인기(드론) ‘프레더터’(MQ-1)의 비행 모습.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해 공격용 무기로도 쓰인다. 위키피디아 갈무리
9·11 테러는 균형추가 한쪽으로 쏠리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대테러전쟁’을 선언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시아이에이에 전면적인 권한을 승인해줬고, 시아이에이는 ‘대테러센터’(CTC)를 만들어 “더이상 외국 정부의 비밀을 훔치는 데 전념하는 기관이 아니라 인간 추적에 사로잡힌 살인 조직”으로 변모했다. 반대로 군사조직인 국방부는 ‘합동특수전사령부’(JSOC)를 중심으로 삼아 첩보 임무를 확대하는 데 나섰다. 9·11 테러 이전까지 국방부는 인적 첩보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시아이에이는 공식적으로 살인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서로를 닮아가는 두 기관이 손을 맞잡고 ‘군-정보 복합체’가 되어, 예멘 파키스탄 소말리아 등 전쟁지역이 아닌 곳에서조차 무력을 동원해 미국의 ‘위협’을 표적으로 규정하고 제거하는 방식의 새로운 전쟁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전쟁은 ‘무소불위’에 가깝다. 2004년 파키스탄의 반군 지도자인 네크 무함마드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이상한 새’(프레더터)를 본 뒤, 그것이 발사한 헬파이어 미사일에 목숨을 잃었다. 2006년 파키스탄의 작은 마을 다마돌라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의 회합이 있다는 첩보 때문에 프레더터 공습을 받았다. 몇 달 뒤에는 아예 아프가니스탄에서 헬기로 날아온 네이비실이 다마돌라를 급습해 조직원들을 잡아갔는데, 이 작전은 파키스탄 정부에 발각조차 되지 않았다. 2009년 9월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는 바다에 정박해 있는 미군 함정에서 날아온 헬기가 기관총 사격으로 1998년 미 대사관 공격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살레 알리 살레 나브한과 알샤바브(소말리아 무장단체) 대원들을 죽였다. 공격은 단지 의심스러운 인물의 의심스러운 행동 여부에 따라 결정됐고, 민간인인지 여부도 제대로 가려내지 못했다. 군인 연령의 남성이라면 ‘적 전투원의 사망’으로 치부됐다.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의 유산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을 뿐 아니라 더욱 확대·발전시켰다. 어느 여론조사 결과에서 미국인 응답자의 69%는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테러리스트를 암살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비밀전쟁에서 ‘민간 위탁’의 영역이 점점 더 커지면서, 이에 대한 통제는 갈수록 더 요원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은이는 그저 자신이 취재한 사실들을 건조하게 펼쳐놓지만,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죽음을 선고하고 처형하는 이 모골송연한 비밀전쟁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절절하다.

국제분쟁 전문기자인 정문태 기자의 새 책 <위험한 프레임>에서도 미국이 벌여온 세계 전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2013~2016년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을 묶은 이 책에서, 지은이는 ‘헤드라인에 없는 미국을 본다’는 소제목으로 “그동안 전쟁에서 죽인 사람 수가 2000만~3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꼽히는” ‘전쟁전문국가’ 미국을 다룬다. 미국은 2004~2013년에만 드론 폭격으로 4500~4700명을 죽였고, 그 틈에 어린이 200여명을 포함해 민간인 1000여명이 살해당했다. 드론 폭격의 민간인 살상률은 34%에 달한다. 지은이는 “전쟁을 숨기고, 전쟁을 책임지지 않고, 전쟁을 일상화하겠다는 정치로부터 태어난 괴물이 바로 드론”이라고 지적한다. 또 미국의 낙인에 따라 테러리스트가 규정되는 현실 등을 까발리며, “미국 전쟁의 제물은 바로 세계시민사회이고 그 희생자가 바로 우리”라고 말한다. 그가 버마,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동티모르, 예멘 등 취재현장을 누비며 썼던 기록을 묶은 책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의 개정판도 함께 나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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