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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강물같은 ‘반란의 역사’ 있었다

등록 2017-01-19 19:31수정 2017-01-20 11:50

페미니스트의 체험과 역사성
90년대 ‘영페미’ ‘넷페미’ 계보
메갈리아 현상에 대한 분석도
90년대 중반 피시통신사 ‘나우누리’의 화면을 보고 있는 여성들. 당시 3대 피시통신사에는 여성주의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넷 페미’의 출발이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90년대 중반 피시통신사 ‘나우누리’의 화면을 보고 있는 여성들. 당시 3대 피시통신사에는 여성주의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넷 페미’의 출발이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페미니스트 모먼트
권김현영·손희정·한채윤·나영정·김홍미리·전희경 지음/그린비·1만5000원

대한민국 넷페미史
권김현영·손희정·박은하·이민경 지음/나무연필·1만3000원

성적 대상
제시카 발렌티 지음, 강경미 옮김/꾸리에·1만5000원

메갈리아의 반란
유민석 지음/봄알람·1만1000원

혼자만 간직해오던 내밀한 체험을 소환하고 정리한 뒤 다시 페미니즘과 연결하며 해석한 이들의 작업은 때론 통증을 불러왔겠다. 애써 고요하게 가라앉혀두었던 밑바닥 진흙을 흔들어 흙탕물을 만드는 일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덕에 이 책들은 개인의 체험기라기보다 잊힌 현대사, 여성사, 운동사, 끝내 쓸 수밖에 없었던 혁명사로 기억·기록될 수 있었다.

그들은 1980년대 남성 운동권 중심의 사회운동과 결별을 선언하고 독자적 여성운동조직을 만든 ‘윗세대 영페미니스트’들과도 달랐다. 수평적인 조직, 맹렬한 저항으로 게릴라 문화운동과 온라인 네트워크 활동을 벌인 그들은 ‘쩍벌남’이란 단어를 만들고, 여성‘가족’부를 반대했으며, 비혼 운동을 시작했다.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은 ‘90년대 영페미니스트’들의 등장이었다. <페미니스트 모먼트>에서 다시 만난 ‘영페미’들은 자신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아들이었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들으며 유년기를 보내다 20대에 만난 페미니즘이라는 “동아줄”에 감격했던 김홍미리는 90년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타인을 평가, 정의, 공격하는 시기를 보냈다며 2015년 이후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진짜’ 페미니즘 가리기 게임에 말려들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대학 때 ‘민족해방’이나 ‘노동해방’의 학습을 했지만 ‘여성해방’과 ‘성정치’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한채윤은 페미니즘과 레즈비어니즘을 접했던 놀라운 경험을 밝힌다. 당시 그가 겪은 여성운동계 내부의 갈등과 논란은 무지와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겠지만,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이들 모두가 그때나 지금이나 전부 옳지도 단일하지도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10월8일 서울 서대문구 ‘벙커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넷페미사’ 강연에서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가 설명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지난해 10월8일 서울 서대문구 ‘벙커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넷페미사’ 강연에서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가 설명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당시 ‘영페미’들은 ‘동지’들을 불편하게 했다. 2000년 운동권 성폭력 가해자 실명공개를 주도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 활동을 반추한 전희경은 예상과 달랐던 공격(명예훼손·사회적 매장·페미나치·백색테러라는 비난)을 복기하며 그때의 복잡한 논쟁과 고민을 털어놓았다. 인권운동, 장애운동, 퀴어운동을 펼쳐온 나영정은 페미니즘이 “회피하지 않을 용기와 세계와 불화하는 것이 괜찮다는 신뢰도 동시에 주었다”고 말한다. 숨은 가족사를 뒤늦게 알게 되면서 ‘민족’과 ‘젠더’를 고민하게 된 손희정은 역사의 폭력을 증언하는 시민이 된 할머니들의 기억과 정치 운동의 힘을 떠올린다. 권김현영은 “환대받지 못한 질문과 호기심이라는 병”을 가진 여성들이 얼마나 구석으로 내몰렸는지 말하면서도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던 용감한 여자들의 글”을 읽으며 여성학을 공부할 수 있었노라 말한다.

2015~16년의 ‘영페미’들은 질문했다. ‘그 페미니스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사실 사라진 적이 없다. “광대한 네트”(손희정)에 떠다녔다. <대한민국 넷페미사>는 인터넷 페미니즘의 역사를 쓰며 세대 간의 경험을 나누려고 기획되었다. 2016년 10월8일, 한창 ‘메갈리아’ 논쟁으로 후끈 달아올랐던 그때 서울 충정로 ‘벙커원’에서 연 7시간30분에 걸친 강의와 토론을 정리한 책이다. 90년대 3대 피시통신사 중 하나인 나우누리 미즈의 ‘시삽’(운영자)이었던 권김현영, 2000년대 중반 ‘원조 파워 트위터 페미니스트’(트페미)로 활동한 손희정이 각각 자신의 경험과 인터넷 페미니스트의 활동을 개괄했다. 지난해 동료들과 ‘봄알람’이란 출판사를 차리고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을 펴낸 작가 이민경은 <주간경향> 박은하 기자와 20~30대 페미니스트로서 앞선 강연자들의 경험과 현재를 연결한다. 인터넷 페미니즘의 이런 흐름은 ‘메갈리아’가 어느날 갑자기 분노를 폭발하는 젊은 여성들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공감, 학습을 거친 ‘넷페미사’ 속에서 터져나온 에너지라는 점을 일깨운다.

90년대 피시통신 ‘나우누리’ 광고. 파란색 화면을 상징하며 신세대가 열어가는 새로운 세상을 상징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90년대 피시통신 ‘나우누리’ 광고. 파란색 화면을 상징하며 신세대가 열어가는 새로운 세상을 상징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인터넷 공간의 여성혐오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유명 인터넷 페미니스트가 쓴 <성적 대상>은 자신이 평생 겪은 성희롱, 강간, 성적 학대, 낙태 이야기를 다뤘다. 마약, 술, 연애로 이어지는 충격적인 젊은 날은 자학과 다름 없었고, 페미니즘을 공부한 뒤에도 쉽게 치유받지 못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페미니즘 관련 글을 쓰면서 남성 누리꾼들의 집중 포화를 받은 지은이는 지난해 5살 딸을 겨냥한 강간과 죽음의 협박을 받고 소셜미디어를 잠시 떠나겠다 발표했다. 지은이가 수신한 폭력적인 이메일과 트위터 멘션이 책 뒤에 첨부돼있는데, 이를 보면 그가 느낀 언어 폭력의 강도를 실감할 수 있다. ‘성적 대상’으로 평생을 살아온 이 인터넷 페미니스트는 “적당한 언어를 가진 적이 없었다”며 한탄하듯 적어두었다.

<메갈리아의 반란>은 바로 그런 ‘언어’에 집중한다.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의 세 번째 책이자 지난해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발언>을 우리말로 옮긴 철학연구자 유민석의 단독 저서다. ‘김치녀’를 ‘한남충’으로, ‘김여사’는 ‘김아재’로, ‘보슬아치’는 ‘자슬아치’로 바꾸며 맞불을 놓은 ‘메갈리아’의 발화를 본격적으로 밀도있게 분석한 첫 번째 단행본인 셈이다. “말대꾸는 약자의 발화 방식”이라며 지은이는 반란적인 말대꾸가 ‘주인’과 ‘노예’의 지위를 교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는 여성혐오자들이 침묵을 경험할 차례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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