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규의 다독시대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열림원(1998), 문학동네(2010) 사회에 어두운 그늘이 짙게 드리워질수록 그 그늘을 자신들의 힘으로 정화하고 싶은 이른바 소영웅주의자들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교하게 조직화되고 매스미디어의 노출 여부에 따라 여론의 향배가 결정되는 현대사회에서는 그들의 외침에 여간해선 귀를 기울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소영웅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념 강화와 근거를 알 수 없는 목표 성취를 위해 이른바 테러를 감행한다. 테러는 늘 익명성이 뒤따른다. 익명의 토대 위에 쌓아올려진 무관심 영역에 융단폭격을 쏟아붓곤 하는 것이다.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진면목은 지나치게 고평가된 그의 소설들이 아니라 익명의 테러, 그 이후를 추적하는 기록물 <언더그라운드>에서 적실히 나타난다.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일단 논픽션이다. 일본 근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되는 1995년에 일어난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것이 책의 내용, 그 전부다. 책은 ‘지하철’과 ‘어둠’으로 상징되는 이미지 속에서 가공할 만한 테러에 의해 우연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견뎌내야 할 삶을 다루고 있다. 그 삶에 대한 기록이 하루키다운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무장한 담담한 문체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희생자들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예고 없이 당한 테러의 잔흔에 두려워하며 점점 내적 공격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는 아마도 지진이란 불가항력의 재앙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일본 사회의 철저히 은폐되었지만 끊임없이 흔들리는 불안의 징후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를 읽고 난 뒤의 본격적인 감상은 그 이후부터다. 옴진리교와 같은 종교적 테러의 파국이 일부 광신도들의 시선 끌기로만 독해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핵심은 한국 사회를 최소한의 인간다움으로 보려 하는 모든 시선을 익명으로 몰아세우는 권력의 횡포로부터 시작된다. 익명의 대중을 자신의 유익을 위한 사적 권력도구로 전용하려 했던 현 정부 수장의 추악함과 그 이면에 숨어든 사이비들의 굿판이 옴진리교의 사린가스처럼 민중을 질식시켜 온 것으로 보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닐 것이다. 천운이라 해야 할지 모르지만 질식의 임계점에서 진실의 속살이 미약하나마 공개되고 있다. 탄핵이란 명백한 법적 절차를 통해 익명의 대중을 담보물로 삼아 미치광이 굿판을 벌이던 권력 괴물들의 폭주에 제동을 건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한국 사회를 암운처럼 휘덮은 사린가스에 비견될 만한 상흔에 대해서는 우려할 구석이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잠시 어둠 속에 기생충처럼 숨어든 권력 괴물들이 또 어떤 익명의 담보물을 갖고 우리네 민중과 인질극을 벌일지 모르는 것이다. 상식 기반이 형편없이 무너져 버린 잿더미 속에서 테러에 준하는 비열한 관심을 이끌어 내 사회의 재앙을 재료 삼아 또다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이비들은 여전히 탄핵받지 않은 것이다. 사회의 어둠은 그것을 소각하거나 말소한다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어둠의 상흔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위무할 줄 아는 자세, 그것만이 기생충처럼 숨어든 사이비들의 부활을 막아 세우는 거의 유일한 상식이 될 것이다. 주원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열림원(1998), 문학동네(2010) 사회에 어두운 그늘이 짙게 드리워질수록 그 그늘을 자신들의 힘으로 정화하고 싶은 이른바 소영웅주의자들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교하게 조직화되고 매스미디어의 노출 여부에 따라 여론의 향배가 결정되는 현대사회에서는 그들의 외침에 여간해선 귀를 기울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소영웅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념 강화와 근거를 알 수 없는 목표 성취를 위해 이른바 테러를 감행한다. 테러는 늘 익명성이 뒤따른다. 익명의 토대 위에 쌓아올려진 무관심 영역에 융단폭격을 쏟아붓곤 하는 것이다.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진면목은 지나치게 고평가된 그의 소설들이 아니라 익명의 테러, 그 이후를 추적하는 기록물 <언더그라운드>에서 적실히 나타난다.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일단 논픽션이다. 일본 근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되는 1995년에 일어난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것이 책의 내용, 그 전부다. 책은 ‘지하철’과 ‘어둠’으로 상징되는 이미지 속에서 가공할 만한 테러에 의해 우연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견뎌내야 할 삶을 다루고 있다. 그 삶에 대한 기록이 하루키다운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무장한 담담한 문체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희생자들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예고 없이 당한 테러의 잔흔에 두려워하며 점점 내적 공격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는 아마도 지진이란 불가항력의 재앙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일본 사회의 철저히 은폐되었지만 끊임없이 흔들리는 불안의 징후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를 읽고 난 뒤의 본격적인 감상은 그 이후부터다. 옴진리교와 같은 종교적 테러의 파국이 일부 광신도들의 시선 끌기로만 독해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핵심은 한국 사회를 최소한의 인간다움으로 보려 하는 모든 시선을 익명으로 몰아세우는 권력의 횡포로부터 시작된다. 익명의 대중을 자신의 유익을 위한 사적 권력도구로 전용하려 했던 현 정부 수장의 추악함과 그 이면에 숨어든 사이비들의 굿판이 옴진리교의 사린가스처럼 민중을 질식시켜 온 것으로 보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닐 것이다. 천운이라 해야 할지 모르지만 질식의 임계점에서 진실의 속살이 미약하나마 공개되고 있다. 탄핵이란 명백한 법적 절차를 통해 익명의 대중을 담보물로 삼아 미치광이 굿판을 벌이던 권력 괴물들의 폭주에 제동을 건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한국 사회를 암운처럼 휘덮은 사린가스에 비견될 만한 상흔에 대해서는 우려할 구석이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잠시 어둠 속에 기생충처럼 숨어든 권력 괴물들이 또 어떤 익명의 담보물을 갖고 우리네 민중과 인질극을 벌일지 모르는 것이다. 상식 기반이 형편없이 무너져 버린 잿더미 속에서 테러에 준하는 비열한 관심을 이끌어 내 사회의 재앙을 재료 삼아 또다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이비들은 여전히 탄핵받지 않은 것이다. 사회의 어둠은 그것을 소각하거나 말소한다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어둠의 상흔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위무할 줄 아는 자세, 그것만이 기생충처럼 숨어든 사이비들의 부활을 막아 세우는 거의 유일한 상식이 될 것이다. 주원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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