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슬라보이 지제크 지음, 박준형 옮김/문학사상·1만8000원 영화 <천국의 말썽>(에른스트 루비치 감독, 1932)에는 부자들을 상대로 절도 행각을 벌이는 유쾌한 도둑 커플 가스통과 릴리가 나온다. 두 사람은 유명 화장품 회사의 여주인인 마담 콜레에게 사기를 치려고 접근하지만, 가스통이 콜레와 사랑에 빠지면서 모든 일이 꼬여버린다.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이 영화의 제목을 따온 새 책(원제 Trouble in Paradise, 2014)에서 과연 ‘천국’은 어디이고 ‘말썽’은 무엇인지 묻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뒀다”며 이를 ‘역사의 종착점’이라 선언했다. 그러나 그 ‘천국’은 여전히 지속적인 ‘말썽’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는 ‘공산주의의 이념’ 학술대회(2013년, 서울)에서 발표한 원고와 지은이가 경희대 석좌교수로 부임해 강의했던 내용을 묶었다. 책의 끝머리에 지은이는 한국의 ‘말뚝박기’ 놀이를 두고 “보통 사람들이 현재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겪는 곤경을 보여주는 완벽한 비유”라고 말하는데, 우리의 시각이 앞 사람의 다리 사이에 머무는 동안 우리의 ‘마스터’(자본)들은 자유롭게 우리의 등을 뛰어 넘고 있기 때문이다. 빚으로 유지하는 경제와 사이버 공간 통제, ‘아랍의 봄’이 가져온 난관, 폭력의 불분명한 역할 등 전방위적인 주제들을 어지럽게 오가는데, 이는 체제의 본질적인 모습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지은이는 진정한 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 현존 질서를 변화시켜야 하며, ‘무정부주의적 수평주의’가 아니라 우리를 행동하게끔 만드는 ‘새로운 마스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체제 극복의 지향점으로 ‘공산주의’를 내걸며 “오늘날 공산주의는 해결책의 이름이 아니라 문제의 이름”이라고 강조하는데, 그것은 “수평선처럼 절대 접근할 수 없는 이상이지만, 우리가 움직이는 아이디어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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