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해냄·1만4000원
김훈의 신작 장편 <공터에서>는 작가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인물 마동수의 죽음을 서술하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1910년생으로 청년기를 만주와 상하이에서 보냈으며 아나키스트들과 어울렸던 그의 이력은 김훈의 부친인 김광주의 그것과 같다. 가족을 돌보지 않고 한사코 집 밖으로만 떠도는 버릇도 김광주의 습성과 닮았다. 그러나 닮은 점은 거기까지. 김광주가 해방 뒤 김구 일행을 따라 귀국해 언론인으로 근무하는 한편 소설가로도 이름을 날린 반면, 마동수는 결혼 전 피난지 부산에서 병원의 피 묻은 군복을 빨래하는 일을 호구지책으로 삼은 것을 제하고는 정확하게 어떤 일로 생계를 꾸렸는지가 불분명하다. 그 아버지의 둘째 아들로 대학을 중퇴하고 잠깐이지만 기자 일을 했다는 점에서 주인공 마차세 역시 작가 김훈의 그림자를 거느린 듯 보이지만, 그를 자전적 인물로 여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공터에서>에 나오는 6·25 전쟁기의 이야기를 취재하느라 당시 신문 복사본을 들춰 보는 김훈 작가. 2012년 6월 일산 작업실에서 찍은 사진이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럼에도 <흑산> 이후 6년 만에 낸 이 소설에서 작가가 부친과 자신이 살아 온 시대를 문학적 대결 상대로 삼았음은 분명하다. 1920년 무렵 마동수의 어린 시절부터 마차세가 아내와 딸을 거느린 가장으로 생활 전선에서 바삐 뛰어다닌 80년대 중반까지 제법 긴 시간대를 감당하느라 작가는 이야기를 33개 짧은 장으로 나누어 스케치하듯 서술하는 방식을 택한다.
“시간은 흐린 날의 저녁 무렵과 같았다. 시간은 마동수의 생명과는 무관하게, 먼 변방으로 몰려가고 있었는데, 마동수의 육신은 그 시간의 썰물에 실려서 수평선 너머로 끌려가고 있었다.”
“일상의 작은 것들을 모으고 쌓아서, 막막한 날들을 건너갈 수 있을 것인지를 마차세는 생각했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마동수의 임종 순간과 생활인 마차세의 상념을 묘사한 대목들이다. 마동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아들들인 장세와 차세의 욕망과 좌절의 드라마가 펼쳐지기는 하지만, 김훈 소설에서 언제나 그렇듯 여기서도 구체적인 이야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의 태도, 또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기자다운 꼼꼼함으로 미시적 사실을 챙기는 일이 거시적 본질에 눈 감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딜레마에서 김훈 소설은 자유롭지 못하다.
“아버지가 세상에 활착하지 못하고 떠돌면서 찾아 헤매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평생을 방외인처럼 겉돌기만 했던 아버지를 두고 마차세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지만 그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마동수의 방황은 거의 전적으로 개인적 기질 탓으로 그려진다. 나라를 빼앗긴 해에 태어나 식민 통치와 전쟁, 독재로 이어지는 신산한 세월을 살다 간 그의 방황과 모색의 사회적 맥락에 작가는 충분한 시선을 주지 않는 듯하다. 그 점에서는 차세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은데, 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해직된 그를 통해 당대의 억압적 본질을 고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작가는 그러지 않는다. 작가 자신이 현장 기자로 목격한 70, 80년대 이야기를 기대했던 독자로서는 실망할 수도 있겠다. 평범한 생활인도 피해 갈 수 없었을 80년 5월 광주의 흔적을 소설에서 찾을 수 없다는 점도 못내 아쉽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니까 무서운 거겠지. 우리 형제는 모두 아버지 닮았어.”
소설에서 마씨 삼부자의 닮은꼴은 거듭 강조된다. 특히 “한국이 너무 무섭고 힘들”다며 외국에 머무는 장세는 아버지의 방랑기와 이방인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 보인다. 그런 장남을 대신해 부모를 챙기고 어떻게든 이 땅에서 살아남고자 애쓰는 차세의 (작가를 닮은) 현실주의가 이 소설의 주제라 해야 할 것이다. 병상의 마동수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가운데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는 상념을 곱씹는데, 그와 장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부터 달아나고자 애쓰는 인물이라면 차세는 무섭고 싫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부대끼며 버텨 보겠노라는 숙명론적 처세술을 구현한 인물이라 하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