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남자의 괴로움은 남성지배체제 재편 탓”

등록 2017-02-02 19:37수정 2017-02-03 14:24

젠더론·교육사회학자 지은이
일본 ‘남성수난시대’ 본질 밝혀
남성들간 차이와 불평등 강조
남자문제의 시대-젠더와 교육의 정치학
다가 후토시 지음, 책사소 옮김/들녘·1만4000원

남자가 문제라고 한다. 여성 고위직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여성 상위 시대’ ‘남성 역차별’을 강조하는 양상은 한국과 일본이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남성 수난 시대”라며 ‘남성보호법’을 국회 제출해야 한다는 호소도 나온다고 한다.

<남자문제의 시대: 젠더와 교육의 정치학>의 지은이 다가 후토시는 교육사회학, 젠더론을 전공한 간사이대 문학부 교수. 여성 대상 폭력 반대운동인 화이트리본 캠페인을 주도하며 남성의 비폭력선언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2001년부터 젠더 연구와 페미니즘의 지적 전통을 잇는 3권의 남성학 저서를 펴냈다. 이번이 4번째 책이다.

‘남자 문제’의 초점은 동서양이 다르다. 서구에서는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학령기 남자 아동에 고민이 집중돼 있고, 한국과 일본은 남자 청년 문제에 신경을 쓴다. ‘프리터족’ ‘니트족’ ‘초식남’ 등의 신조어로 취업을 거부하거나 결혼하여 생계부양자가 되려 하지 않는 젊은 남자들을 추궁하는 수도 많다. 하지만 이는 개인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 지은이의 관점.

여성의 전문직·고위직 진출이 여권신장으로 인식되면서 ‘남자가 사라졌다’고 한탄하는 현상은 한국·일본 양국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사진은 2009년 2월2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연 신임법관 임명식. 연합뉴스
여성의 전문직·고위직 진출이 여권신장으로 인식되면서 ‘남자가 사라졌다’고 한탄하는 현상은 한국·일본 양국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사진은 2009년 2월2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연 신임법관 임명식. 연합뉴스
일본에서 젠더 갈등의 양상은 심각한 편이지만 남성우위 체제는 서구보다 “안정적”이다. 세계경제포럼 2014년 ‘젠더 갭 지수’를 보면, 독일은 12위, 미국은 20위, 호주는 24위, 영국은 26위, 일본은 104위였다. (한국은 142개국 중 117위였다) 2013년 후생노동성의 조사에서 부장급 임원은 남성이 94%를 차지했다. 2014년 남성노동자 중 정규직은 78%, 여성노동자 중 정규직은 43%였다. 일본은 서구에 견줘 압도적인 남성 위주 사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남성은 괴로움을 호소할까? 지은이는 “남성우위 사회에서의 남성 괴로움”이라 진단한다. 남성이 괴로운 사안의 대다수는 여성우위에서 오는 게 아니라 무리하게 남성우위체제를 유지하려는 데서 발생한 부작용이라는 풀이다. 주된 이론적 줄기는 사회학자 래윈 코넬(Raewyn W. Connell)의 ‘헤게모니적 남성성’ 개념에서 갖고 왔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예는 백인 이성애자 중산층 남성, 일본의 경우 70~80년대 샐러리맨이다. 이들 일부 남성이 지배하는 체제 아래 “가부장제의 배당금”을 받은 남녀 “공범”들이 있다. 이렇게 “남성 내 차이와 불평등”(메스너)에 주목하면 남녀 중 누가 더 나쁜가 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여성 우위론’ ‘남성피해자론’의 허점도 밝힐 수 있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또 한가지 중요한 건 노동시장의 변화다. 근대 사회의 젠더화된 노동시장에서 남녀간 직무 기대 차이는 위계적 직무 분리를 낳았다. 후방의 보조적 구실은 여성에게 맡기고, 조직 목적의 달성에 직결되는 기회는 남성에게 주는 식이었다. 그러나 공업사회에서 소비사회로 변화하면서 ‘물건’ 생산에서 ‘인간’ 관계로 경제·산업의 중심이 이동했다. 건설 및 제조업이 쇠퇴하고 남성적 능력의 시장가치가 저하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임금 수준과 동일하거나 우위에 섰는가? 전혀 아니다. 2013년 기준 남성 대비 여성임금 비율은 일본은 72.2%에 머물렀다. (한국은 63.1%로 14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 남녀 임금 격차 1등이었다) 지금의 노동시장은 경쟁의 승리자인 극소수 여성을 ‘명예남성’으로 끌어들이고 탈락한 대부분의 여성과 점점 더 많은 남성을 주변화한다는 것이다.

책의 특징은 후반부에서 나타나는데, 남성의 학업부진과 성역할에 얽매이지 않는 ‘젠더 프리 교육’의 성과와 한계를 검토한 부분이다. 교육으로 성역할 고정관념을 완화해보자는 교육사회학자다운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자연스러운 성차를 인정하는 보수적 관점에서 벗어나 ‘젠더 리버럴’의 관점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남성 연구’를 주로 해온 지은이는 남성학이 마치 남자가 더 곤란을 겪고 있다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다고 ‘젠더’를 여성의 문제로만 파악해서는 복잡한 젠더 현상을 분석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여성학·페미니즘의 지적 전통 위에서 적절한 시각으로 교육하고 젠더의 정치학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 남성을 단일한 집단으로 상정하지 않고, 다양한 ‘남성성들’이 있다고 보며 남성들간의 ‘차이’의 정치학을 강조한 점이 핵심이다. 고임금 남성들만 부당하게 고배당을 얻는 사회에서는 남녀와 성소수자 모두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일 양국의 현실이 비슷하긴 하지만 한국에도 노동시장의 구조변동과 젠더 불평등에 대한 연구가 적지 않다. 한국 상황과 연관해서 읽으면 더욱 좋을 책이고, 관련 국내서 발간이 기대되기도 한다.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