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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삶을 전장으로 만든 ‘로지스틱스’

등록 2017-02-09 19:39수정 2017-02-09 20:09

잠깐 독서
로지스틱스
데보라 코웬 지음, 권범철 옮김/갈무리·2만2000원

비즈니스의 물류와 전쟁의 병참을 가리키는 말, ‘로지스틱스’(logistics)라는 개념으로 전지구적 폭력의 네트워크를 밝힌 독특한 책이다. 옛날 군사술에서 비롯한 로지스틱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과 물건을 실어나르며 실험되었고, 이후 기업의 비즈니스 물류로 변화했다. 책은 이 ‘로지스틱스’라는 말을 전쟁과 물류 어느 한쪽에 못 박아두지 않으면서 두 개념이 혼재된 상황을 설명한다.

‘경제 지구화’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인 컨테이너는 배에 화물을 싣고 내리는 시간을 줄였고, 항만 노동 비용을 줄였다. 지구화와 시공간·영토의 변형을 가능하게 했던 것도 로지스틱스의 영향이 크다. 사물을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순환시키는 ‘공급 사슬’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사슬을 위협하는 일은 공동체 전체의 위협으로 간주된다. 항구 점거 노동자, 불법 어획에 저항하는 소말리아 해안 어부들은 ‘악’(해적)으로 취급받는다.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 관리, 해적 출몰 지역의 통치, 물류가 흐르고 폭력이 난무하는 도시 모두 로지스틱스의 현장이 된다.

캐나다 토론토대 지리학과 교수인 지은이 데버러 코웬(Deborah Cowen)은 빈곤의 교외화, 인종과 공간의 문제, 도시보안 등을 연구해왔다. 이 책을 쓰는 데 10년이 걸렸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2011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 꼭대기에서 벌인 김진숙의 고공농성을 언급하며 “특별한 용기”이자 “다른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 모두가 배울 수 있는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광우병 촛불 시위 때 컨테이너로 쌓아올린 ‘명박산성’, 용산참사 때 경찰특공대를 컨테이너에 실어 ‘작전’을 펼쳤던 일도 군사술과 비즈니스 기술의 합체인 ‘로지스틱스’의 본질을 확연히 드러낸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 옮긴이가 후기에 적었듯 이 사태는 국가의 통치가 “인구의 안전(보안)에서 사물 순환의 보안으로 옮겨가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민간과 군사, 비즈니스와 전쟁술의 구별이 불분명해진 시대, 삶은 전쟁터가 되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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