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국민-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근대 국가의 법과 과학
홍양희 박정미 등 지음,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젠더연구팀 기획/서해문집·1만8000원
1955년, “법정 최대의 쑈”가 벌어졌다. (<경향신문>, 1955년 7월10일치) 그 해 6월, 박인수라는 26살 청년이 헌병 대위를 사칭해 “양가의 규수”인 명문대생 여성들을 유혹해 혼인빙자간음을 저질렀다며 기소되었던 사건이다. “농락당한” 여성은 최대 80여명까지 이른다 했다. 그러나 1심에서 ‘혼빙간’은 무죄 판결이 났다. 당시 판사는 사건만큼이나 후대에 길이 남을 판결 소감을 밝힌다. “정조라고 하여 다 법이 보호하는 것은 아니”며 “가치가 있고 보호할 사회적 이익이 있을 때 한하여 법은 그 정조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보호’ 하거나 ‘보호하지 않아도 될’ 여성의 정조가 따로 있다는 법의 ‘기준’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여성의 성적 일탈―또는 자유―에 대한 경종”(박정미)을 울린 것이다.
식민지시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나혜석과 최린의 간통 사건 기사. 나혜석은 간통죄로 고소하겠다는 남편 김우영의 협박에 1930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뒤 나혜석은 ‘이혼고백서’라는 글로 조선 남성의 이중적 성도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진은 <동아일보> 1934년 9월20일치 보도. 서해문집 제공
<‘성’스러운 국민>은 이렇게 성(聖)스럽거나 성(性)스러운 문제를 다룬다. 근대 국가의 법·과학 기획과 젠더, 섹슈얼리티 체계를 분석한 것이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젠더연구팀이 기획해 홍양희, 박정미, 허윤, 김청강, 이정선, 소현숙, 김은경, 정연보 등이 참여했다. 지은이들은 간통죄, 혼인빙자간음죄, 병역법, 가족법, 동성동본금혼제, 줄기세포와 젠더 연구 등을 한권에 묶었다. 책 전체를 통괄하는 문구를 찾자면, “남성이 병역을 통해 국민으로 완성된다면 여성은 모성을 통해 비로소 ‘국민’이 되는 젠더 정치학이 작동한다”(홍양희)는 것이다.
박인수 사건 1심 2차 공판. <경향신문> 1955년 7월9일치에 실린 사진. 서해문집 제공
머리말에서 밝혔듯 이 책의 성과는 오늘날 여성 혐오, 멸시가 깊게 뿌리내린 토양을 계보학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이다. 근대 국가는 국민을 탄생시켰고, 국가와 민족을 중심으로 성·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와 배제를 행했다. 근대적 지식, 제도, 담론을 통해서였다. 국가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단속했다. 해방되었지만, 식민의 잔재(colonial legacy)로서 ‘포스트식민성’은 여전히 남아 국가 및 민족 기획의 중심을 차지했다. 2015년 사라진 ‘간통죄’ 또한 일제 통치의 잔재였다. 1912년 일본 형법에 따라 시행된 간통죄는 식민지시기 내내 기혼 여성의 성만을 처벌했다. 왜일까. 결혼한 여성의 간통이 “혈통의 혼란”을 줘 “친족의 융화”를 파괴하고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였다. 기혼 여성의 성은 가족 문제, 국가 문제, 사회질서, 공공질서 차원에서 통제되었다. (홍양희)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의 성을 보호하려고 한 혼인빙자간음죄에서도 이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혼인빙자간음죄는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시행됐다가 2009년에 이르러서야 위헌 판결로 사라졌다. 이 법은 일제가 마련한 ‘개정형법가안’에서 나왔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한번도 시행되지 않았다. 한국에 도입될 당시 여성의 열악한 법적·사회적 지위를 보호하려는 측면이 있었다 해도, 입법취지는 철저히 여성의 ‘인권’보다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의 ‘정조’ 보호와 맞닿아있었다. (박정미)
‘성스러움’은 ‘국민 만들기’의 조건이었다. 국적법 논의에서도 “단군의 혈통” “단일 민족의 순결성”을 내세운 부계혈통주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국가의 동량인 ‘국민’을 낳는 여성은 “순결한 좋은 처”가 되어야 했고,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아버지가 한국인일 것, ‘음행의 상습’이 순결할 것, 동성동본이 아닐 것 등이다. 1950~70년대 일제하 관습법으로 남아있던 동성동본금혼제는 ‘전통의 수호’라는 민족주의적 열망에 우생학적 과학적 지식을 덧입힌 법이었다. (소현숙)
1977년 9월16일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앞 동성동본불혼제도개정촉진회와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함께한 가족법 개정 가두 서명운동. 서해문집 제공
그러나 “순결한 좋은 처”는 금치산자와 같은 ‘법적 무능력자’였다. 기혼 여성은 남편 동의 없이 재산권을 행사하거나 법률행위를 할 수 없었다. 1958년 시행한 새 가족법 논쟁에서 ‘전통’ ‘관습’이란 명분이 위세를 떨치며 ‘젠더 위계적 평등’이란 모순적 논리를 법적으로 정당화했다. 식민지 유산인 호주제는 “전통”으로 재탄생했고 헌법이 보장한 평등은 제한되었다. (김은경)
국가는 경범죄와 병역법으로 ‘퀴어’한 사람들을 색출했고 범법자로 만들었다. 일제의 병역법에서 계보를 찾을 수 있는 병역법은 ‘국민’의 경계를 만들었다. 훗날 줄기세포 연구에 쓰일 난자 기증 운동에서 보듯 국가의 발전에 기여한 여성은 ‘무궁화’로 그려지면서 ‘애국 모성’ ‘성스러운 여성’의 상징이 되었다. (허윤 김청강 정연보)
근대 국가 형성기 ‘전통의 재/발명’으로 여성과 성소수자들은 ‘국민’에서 자주 제외되었다. 지금까지도 어떤 이들을 ‘국민’에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 하는 국가의 기획은 이어진다. 행정자치부가 ‘출산지도’를 만들어 가임기 여성의 수를 지역별로 밝혀 논란이 된 것이 한 예다. 노동력과 ‘국민’의 생산자원으로서 여성의 몸을 상정하는 국가의 제도, 담론, 지식 기획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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