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성폭행, 그 후

등록 2017-02-16 19:38수정 2017-02-16 19:50

파리에서 보낸 한 시간-성폭행과 그 이후의 삶을 그린 실화
칼린 L. 프리드먼 지음, 이민정 옮김/내인생의책·1만5000원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철학교수 칼린 프리드먼이 안식년을 맞아 작심하듯 쓴 책이다. <파리에서 보낸 한 시간>은 젊디 젊은 20대 초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을 만큼 섬뜩한 기억과 마주한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수기.

1990년 8월1일, 지은이는 대학에 들어간 첫 해 유럽 배낭여행 중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강간 당했다. 가해자는 전 연인의 친구였고, 지은이를 협박할 때 썼던 식칼을 소지한 채 한달 만에 검거되었다.

이 책이 성폭행 자체보다 더 자세히 기록한 것은 그 이후 행로다. 지은이는 지독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 밤잠을 이루지 못해 술과 약을 삼켰고 공황장애, 발작, 플래시백(재현)을 겪었다. 애써 이성과 성관계를 하는 것, 여행을 하는 것도 성폭행의 기억을 재현하려는 양상의 하나였다고 한다.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처럼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킨 까닭은 비슷한 상황에서 결과를 바꿔놓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가해자는 8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지은이는 고통을 놓을 수 없어 성폭행 트라우마 치료에 돌입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대해 끈질기게 공부하고 상담했으며 아프리카로 떠나 그곳의 성폭행 반대운동에도 동참했다. ‘숫처녀’의 피가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되고, 영유아 강간이 에이즈 치료 수단으로 이용되는 곳에서 피해생존자들을 만났고 경험을 털어놓으며 서로 힘을 돋웠다.

지은이는 성폭행 피해를 경험한 바를 숨기지 않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피해자로서 자신과 일상인으로서의 자신을 일치시키는 정체성 확립에도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피해생존자의 ‘말하기’가 은폐된 사회 구조와 문제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 “강간 사건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우리는 그 일을,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점이자 부와 권력의 분배 방식에서 야기된 문제로 다시금 조명할 수 있다.”

이유진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