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서지학회/소명출판·3만7000원 해방 뒤 한국전쟁을 앞뒤로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북한으로 넘어갔다. 이른바 ‘납월북’ 인사들이다. 이들의 존재와 작품은 남한에서 한동안 금기시됐으나, 1987년 ‘6·29 선언’ 이후 전면 해제됐다. 오랫동안 단절됐던 이들의 흔적을 짚는 것은 오늘날 우리 학계의 여전한 과제로 꼽힌다. 근대 문헌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근대서지학회는 청주고인쇄박물관과 함께 지난해 12월 ‘납월북 예술가·지식인의 행로’란 제목의 학술대회를 열었다. 당시 학술대회 때 발표된 논문들이 최근 발간된 반년간 잡지 <근대서지 제14호>(2016년 하반기)에 실렸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한국전쟁납북자료원’의 명단, 정부의 금지 명단, 북한의 문화단체 임원 현황 등을 중심으로 납월북 ‘문화인’(학문·예술 따위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규모를 다시 짚어봤다. 전쟁 전 이기영, 한설야, 이태준, 임화 등의 문인들이 북으로 건너갔고, 전쟁 중에는 문학·예술분야 73명이 북으로 납월북됐다고 본다. 전쟁 뒤 북한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현황을 보면, “글보다 대중선동과 체제 선전에 효과적인 시각적 영상예술”을 우대하는 측면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그 뒤 남로당계 임화, 설정식 등의 문인들이 사형을 당하고 이태준, 김남천 등은 북한 문화계 최고 권력자였던 한설야로부터 공개 비판을 당하는 등 대대적인 숙청 과정이 있었다. 그랬던 한설야도 1962년에는 비판의 대상으로 추락하여 <조선대백과사전>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신수경 박사(명지대)는 해방기 폭발적으로 늘어난 출판물의 표지화를 통해 월북화가들의 작품 세계를 조명했다. 표지화는 작가들의 이념노선과 작품 경향까지 추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박문원, 손영기, 최은석 등 좌익 계열의 젊은 미술가들은 군중, 투사, 깃발 등의 이미지를 앞세운 강렬한 느낌의 판화와 소묘를 주로 제작했다. 북으로 간 뒤 이들의 작품 활동은 북한 현대미술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한국 고전문학 분야 가운데 판소리·판소리계 소설 연구의 개척자로 손꼽히는 국문학자 김삼불에 대한 연구(유춘동 선문대 교수 발표)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김삼불은 <배비장전·옹고집전>을 현대말로 옮기고 내용을 주석해 <춘향전> 이외 판소리계 소설의 중요성과 가치를 세상에 알렸고, 북한으로 건너간 뒤로는 <토끼전·장끼전>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작업을 펼쳤다. 그러나 이후 “판소리의 내용엔 유교사상이 강조되어 있다”는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김삼불도, 판소리 연구도 북한에서 사실상 퇴출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했던 납월북 체육인들의 현황도 흥미롭다. 홍윤표 <오센> 선임기자는 1930년대 조선 최고의 씨름꾼이었던 나윤출, 한국 체육기자의 선구자로 마라토너 손기정의 유니폼에서 일장기를 지우는 일을 주도했던 이길용, ‘한국 역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서상천 등의 행적을 살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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