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플랫폼 <문학3>의 첫번째 ‘문학몹’ 행사. 오빛나리 ‘탈선’ 대표가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창비 제공
“문단 내 성폭력이 슬픈 이유는 꿈을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성의 꿈, 노동, 존엄이 훼손된다. 가해자는 남는데 피해자가 그 판을 떠나는 것이다.”(강소영 출판편집자)
17일 오후, 지난해 10월 이후 한국의 문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문단 내 성폭력’을 토론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서울 마포구 까페창비 지하 1층에서 연 ‘#문단_내_성폭력, 문학과 여성들’ 행사였다. 지난 1월16일 창비가 창간한 문학플랫폼 <문학3>이 마련한 첫번째 ‘문학몹’으로, 70여명의 청중이 함께했다.
이날 토론자들은 트위터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된 ‘문단 내 성폭력’ 발언 뒤 변화한 환경과 이후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1부 사회를 맡은 양경언 문학평론가(<문학3> 기획위원)는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터져나오기 전, 축적된 배경과 시간이 있었다”며 “많은 분들이 생존자이자 기록자로 이 자리에 함께했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트위터에서 제기된 문단 성폭력 사건들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남성중심적인 문단 문화와 성별적 위계를 고발하며, 고통도 털어놓았다. 고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생들이 성폭력 사건에 집단대응하며 만든 연대체인 ‘탈선’의 오빛나리 대표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여성의 육체를 착취하고 대상화해온 문화를 비판했다. “문학 작품들을 보면, 성을 성폭력으로 그리는 전형적인 남성기득권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습작 과정에서 여성 ‘문학청년’들이 겪는 어려움도 밝혔다. “(성폭력 묘사 등이) 섹시하고 예술적이라며 가르치고 배우기 때문에 결국은 여성 습작생들 또한 이를 받아들여 글을 쓰며,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게 된다.” 오씨는 “자기 감수성에 도취해 여자들을 만나고, 상처받고, 구원받는 과정을 그리는 서사를 이제는 도저히 읽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소영 출판편집자는 성폭력 사건을 저지른 문인을 감싸는 문단과 출판계 분위기를 비판했다. “작품이 훌륭하기에 특정 작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게 위대한 작가는 없다”는 것이다.
문단의 철저한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수진 소설가는 “문학은 이제 바닥으로 더 내려가야 한다. 조리돌림을 스스로 당하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특정의 권위있는 작가가 신인을 ‘등단’시키는 구조도 비판했다. “선생, 스승 없이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누가 누구를 뽑는 시스템이 문제다. 계속 ‘불편하다’고 말해야 한다. 문학을 사랑하고 복무하는 사람으로서 바꿔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예술인의 노동 착취, 낮은 임금구조에 여성이 편입되는 ‘노동의 여성화’ 비판도 잇따랐다. 권명아 동아대 교수(국문학·평론가)는 “위계를 이용한 권력 남용은 피해자 개인이 입증하기 어려우니 문단 내 위계를 체계적으로 드러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를 처음 올렸다고 밝힌 ‘매창’(대화명)은 청중석에서 “시를 배우며 성폭력을 당했지만 처음엔 ‘문단 내 성폭력’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며 “(마찬가지로) 내가 당한 게 대체 무엇인지 언어로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문단 내 성폭력의 특별한 지점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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