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기사는 아이스크림과 같습니다. 계속 만지작거리면 녹고 맙니다. 나중에 썼다가는 중요한 문제가 뒤로 밀려나 눈길을 받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신간을 놓고 회의하는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이 책이 중요하다 하고, 누군가는 저 책이 더 중요하다 목소리를 높입니다. 다음주에 쓰자며 미뤄두는 책들도 있지요. 그런데, 다음 회의 때가 되면 ‘나중에 쓰자’고 했던 책이 도통 눈에 띄지 않습니다. 보려고 사두었던 책도 비슷하더군요. 당장 손에 잡고 읽지 않으면 영영 못 보는 경우가 더러 있지요.
신간 <누가 가짜 경제 민주화를 말하는가>(책담 펴냄)의 지은이 정승일 박사는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불평등을 강화하는 자유시장 논리에 반대합니다. 경제학자·정치인들만 문제는 아니랍니다. 노조도 하청과 비정규직 문제를 나중으로 미뤄 임금·복지 수준이 20년째 개선되지 않았다는 말이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하청노동자의 임금차별 해소와 권리보장은 이른바 ‘민주 진영’ 안에서조차 ‘나중에’라고 했던 사안입니다. 부양의무제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정 박사는 ‘헬 조선’을 탈출하려면 노동자들의 ‘형제애’(자매애는 왜 없나요), 곧 공동체적 연대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랩 걸>(알마 펴냄)을 보면, 다 자란 단풍나무들은 매일 밤 뿌리로 빨아들인 물을 주변 어린 나무에게 나눠준다고 합니다. 미뤘다간 숲 전체가 폐허로 변하겠죠.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으로 당선된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 출판인회의 신임회장 강맑실 사계절 대표가 출판계 현안을 해결하자며 나선 것 역시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절박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무엇을 우선시하는지 정부의 출판정책도 잘 지켜보겠습니다.
오늘의 ‘책과 생각’도 내일치는 없습니다. 당장, 만나보시죠.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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